오늘 따라 어머니가 너무 그립습니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다보니 너무도 그리운 얼굴이 있습니다. 어머니! 정말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자그마하시고 고우셨습니다. 10남매를 낳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어머니는 15살에 시집오셔서 16살에 큰시숙을 낳으셨다고 하셨습니다. 2년 터울로 자식을 줄줄이(?) 낳으신 어머니 보고,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많은 자식이 태어났을까. 정말 경이롭기까지 했었거든요.
남편 나이 7살 되던 해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그리고 어머니의 자식 거두기는 눈물겨운 삶 그 자체였을 겁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들어가 살기 시작한 시골생활은 어머니의 막내아들 을 빼앗아간 나의 대한 미움으로 시기 질투였을 겁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란 남편은 막내답지 않게 어른스러웠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어머니께 효도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더니 한약을 지어 왔습니다. 병약 일주일치 보약 두 재. ㅜ.ㅜ 전 시험지 받아든 학생처럼 걱정이
앞서고, 짜증이 났죠. 남편 曰. “한약은 정성이래! 시간 맞춰서 잘 달아드려!” 해봤어야 잘하지?! 지금은 가스렌지에 전기 약탕기에 별 거 다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투박한 옹기 약탕기에다 불 때는 아궁이. 나보고 어쩌라고. 우씨~
한 가지 꾀를 내서 남편한테
석유곤로를 사다주면 약을 잘 다릴 수가 있다고 했더니 흔쾌히 사다 주었고 모든 걸 아끼고 필요 없는 돈 들어가는 걸 싫어했던 어머니는 그 일로
인해서 나를 미오 했어요. ^^;; 누군 석유곤로 쓸 줄 몰라서 안쓰는 줄 아냐. 기름값이 들어가고, 냄새가 나고, 에휴 ~ 어머니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죠. 못들은 척~
약은 제시간에 꼬박꼬박 성의껏 다린 거란 걸 강조하면서, “드세요 어머니.” 약사발을 든 어머니가 “이거 배불러서 어떻게 다 마시니!” 약사발 가득 찰랑찰랑 하게 있었거든요. “히힛~ 제가 잘 할 줄 몰라서요. 그래도 드세요 어머니! 아깝잖아요.” 어느 날은 약사발 반도 안되게, 어느날은 반도 넘게 다려드렸죠. 나중엔 숙달이 되었는지, 알맞게 맛있게 데리기 시작했죠. 헤헤~
그리고 마지막 약사발을 드리고 나올려니 어머니가 앉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곤 속곳에서 돈 이만 원을 꺼내더니 “너 사탕
좋아하지? 사먹어라.” 오잉?! 웬일이시지.
어머니 말씀이 “그동안 지켜봤는데 약 다리는 걸 보고 네가 거짓이 없다는 걸 느꼈다‘고 하시더라구요. 무슨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죠. 약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주는 제가 어머니 눈엔 이뻐보였나 봐요. 약이 너무 많으면 버리거나 모자라면 물 넣어서 갖다주는 사람도 있다면서요. ;;
어느 날 셋째 시누이 시댁에 경사가 있어서 시어머니가 서울로 3박 4일로 가신 일이 있었는데, 전 마냥 신이 나는 거였어요. 해방이다~ㅎ 사실 그동안 시골음식이 제 입에 안맞아서 고생고생 하다가 어머니 안계신 동안 내 입에 맞는 거 해먹으려고 작정을 했죠. 룰루랄라~
그런데 시어머니가 이틀 만에 오신 거에요. 황당~ 집에 오신 어머니는 방에도 안들어가시고 부엌찬장부터 여시더니 반찬을 이것저것 내려놓으시면서 어머니 특유의 잔소리는 시작 되었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내가 집을 못비운다 못비워.” ㅡ.ㅡ;; 우쒸~ 먹고 싶은 거 해먹는 것도 죈가. 젠장. 사실 어머니는 누가 반찬 만드는 걸 용납을 안하셧거든요. ^^;; 어머니가 하셔야만 자식들이 잘 먹는다고. 그 뒤론 전 설겆이 담당이었고, 반찬을 만드는 것은 꿈도~ 못꿨죠. 우띠~
그리고 칼라TV를 사온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어디다 놀려고?“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방에 놔야지!“ 전 반대한다고 어머니 방에 놓자고 했죠. 어떻게 우리방에 놓냐고, 어머니 방에 흑백텔레비젼을 놓고 그럴 수 없다고 했죠. 두 대 사면 좋은데 그땐 엄청 비쌌거든요. 남편은 고집을 피웠고, 결국은 우리방에 칼라텔레비젼이 들어앉았습니다. 그리곤 어머니와 한방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시작 되었죠. ㅜ.ㅜ
텔레비젼을 보다가 주무시는 어머니를 가시라고 할 수 없어서 이불을 덮어드리고 한것이 원인이었는지, 어머니의 말없는 시위였는지. 연속극에서만 나는 일이고 소설에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한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한방 동침에 대해서 남편은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전 당연히 두 채의 이불을 피게 되었죠.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는 동안 어머니가 당신의 방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발단은 새벽 갑자기 찾아오신 셋째시숙이 어머니 방에 가셨다가 어머니가 안계시자 저희방에서 주무시는 어머니를 보고 난리가 났거든요. 우히힛~시숙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
어느 날 사건(?)생겨서, 어머니한테 제가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어르신하고 말씀을 나누시던 어머니가 제 흉을 보시는 거였어요. 아띵~ 내 딴엔 잘한다고 했는데. 그리곤 어머니한테 그랬죠. “전 어머니가 싫어요! 이제부터 어머니하고 말 안할테니 저한테 말붙이지 말라‘고 했죠. 저것이 미쳤나, 황당해하는 어머니를 뒤로 전 야멸차게 굴었습니다. 두입을 꼭 닫구요. 제가 한 고집 하거든요. ㅎ
어머닌 저한테 말붙이려고 하셨고 전 피해 다녔어요. ㅋㅋ 방으로 들어오시면 제가 나가고 부엌에 계시면 제가 방으로 들어가고, 밥먹을 때 눈도 안마주치고 묵묵히 밥만 먹구요. 소리없는 전쟁이었죠. 남편이 왜케 조용해? 해도. 할 말 없는데.
답답해하시던 어머니가 나를 붙잡아 앉히시더니 “말 좀 하자. 제발. 왜 그러는지 이유나 알자”고 하더라구요. 할 말 없다고 하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는 거에요. 이번에 제가 당황했죠. “어라! 왜 우세요?” “니가 나를 깔보는 것 같아서 그런다!” 흐밍.
그래서 그동안 가슴에 묻어둔 말을 쏟아냈죠, 당연히. 이차저차 여차저차. 그래도 그렇지 제가 아무리 모자란 며느리라도 그렇죠,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흉을 보실 수 있냐고, 며느리도 자식인데 자식 흉을 그것도 남한테, 불만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해야 제가 고치든 말든 하죠. 저 그런 어머니가 정말 싫어요! 우린 그동안에 쌓였던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게 되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사이가 가까워졌죠. ㅎ
남편의 직장일로 우리부부는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한 삼년을 지내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 우린 시골이 아닌 시내에 자리를 잡았고,
어머니의 우리집 방문은 눈물겨운 거였습니다. 오실 때마다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 바리바리 만들어서 오시는 건 예사시구, 생선은 바로 꺼내서
튀기거나 매운탕 끓일 수 있도록 손질을 깨끗하게 해서 가져오시고, 김치는 담굴 새도 없이 각종 김치 퍼레이드를 벌렸죠. 밑반찬에 건어물까지.
제가 만들어서 먹는다고 해도 어머닌 그러시더군요. “아니다. 나 죽으면 해서 먹어라.” 살아있는 동안 해주고 싶으시다고, 그리곤 제 손을 잡으시더니, 니가 없는 동안 니가 얼마나 좋은 며느리였는지 느꼈다고 하시더군요. 에휴~ 난 어머닐 미워했었는뎅.
어머니에게 많은 며느리가 있었지만 ‘내리사랑’이라고 막내며느리한테 쏟으신 어머니의 사랑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큰 사랑이었네요.
그런 어머니가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김치를 담그다가도, 생선을 다듬다가도, 문득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너무도 편하게 지내서 그럴까요? 유난히도 저희한테 보여주신 사랑을 보답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오늘 따라 어머니가 너무 그립습니다. 보고싶구요.
'♣ 글 > [펌글]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투의 정치학 (0) | 2005.10.03 |
---|---|
소설가 이 외수의 신혼이야기 (0) | 2005.10.03 |
[펌글]인연이라는 것(1) (0) | 2005.10.03 |
[펌글]인연이라는 것(2) - 딸아이 성장기 (0) | 2005.10.03 |
[펌글]인연이라는 것(4) - 나의 이야기 (0) | 2005.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