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여러분은 블랙홀 근처까지 다가와 블랙홀을 쳐다보았다.
자, 이제 멋진 시간이 다가온다.
B - Day... 이제 여러분은 장자의 꿈 처럼 블랙홀이 내가되고, 내가 블랙홀이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은 블랙홀로 꼴아박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뭐, 어차피 사고 실험일 뿐이니 블랙홀과 하나되는 느낌을 머리속에서라도 잘 느껴보기 바란다.
블랙홀로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하는 일이 있다.
블랙홀은 알다시피, 중력이 매우 강한 천체이다. (간편한 설명을 위해 뉴턴의 관점을 이용한다.)
우리는 블랙홀 주위에서 강한 중력을 받을 것이며, 빨려 들게 될 것이다.
어떤 느낌을 받을까?
지구에서 받는 중력이 증가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짓눌리는 느낌일까?
아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아래로 끌리는 힘을 느끼는 이유는, 그 반작용인 수직항력이 있기 때문이다.
(수직항력 : 물체가 접촉한 면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
지구는 우리를 땅으로 끌어당기고, 땅이 그 힘만큼 우리를 받쳐 주므로 우리는 땅이 받치는 힘을 느끼는 것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중력 상태'는 무중력 상태가 아니다.
놀이공원에서 자이로드롭을 탈 때, 번지점프를 할 때...
우리는 중력이 없는것 처럼 느끼게 된다.
이를 일반적으로 무중력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무중력 상태라고 할 수 없다.
그때도 우리는 분명히 중력의 작용을 받아 가속운동(낙하) 하고 있으며 중력이 없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우리를 받치는 수직항력이 없기 때문에, 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엄밀한 표현으로는 무중력 상태가 아니라 무 수직항력 상태라고 해야할 것이다.
아하!
그러면 블랙홀로 떨어질 때에는 중력을 느끼지 않고 놀이공원에서 자이로드롭을 타는 기분으로 점점 빠른 속도로 블랙홀을 향해 떨어져 가겠군요.
당신은 블랙홀로 향하는 우주선을 타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앞에서 나는 단호히 말하겠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뉴턴에 따르면 중력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즉, 거리가 멀어지면 더 약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당신이 발부터 블랙홀로 빨려 든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의 키가 0이 아닌 이상 블랙홀에서 당신의 발끝까지의 거리가 머리끝까지의 거리보다 가까울 것이다.
* 여기서 내가 당신이 2차원 괴물이라 키가 0인 경우는 고려하지 않겠다.
위 그림과 같이 거리차이가 발생한다.
거리가 가까우면 중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거리가 멀면 중력이 더 약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블랙홀은 사람의 발을, 머리보다 더 강하게 잡아당길 것이고 빨려드는 인간의 발이, 인간의 머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블랙홀로 낙하한다.
즉, 당신은 길이방향으로 잡아늘여지게 된다.
오호, 키가 작아서 고민하시는 분들, 아주 멋지게 키를 키워주는 기계가 있어요.
지금 당장 블랙홀로 가시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우주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인가?
뉴턴에 따르면, 또한 중력은 질량중심방향으로 작용한다.
블랙홀은 구형.
질량중심은 구의 중심.
당신이 아주 날씬하여, 두께를 가지지 않는 정도가 아닌 이상 옆으로의 길이를 지닐 것이다.
* 이번에도, 당신이 바늘같은 1차원 괴물이 아니라 믿겠다.
자, 한번 따라해 보세요.
우선 종이에 컴퍼스로 원을 그립니다.
그 다음, 원의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직선을 몇개 그리세요.
어떤가?
욱일승천기가 생각난다고?
그걸 말하고자 한 게 아니다.
직선 사이의 거리가 원의 중심으로 올 수록 좁아진단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의 중심을 향하는 직선.
만약 그 원이 질량체라면, 그 주위의 물체는 그 직선방향으로 힘(중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 주위에서 두께를 가진 물체는, 좌우 방향으로 안쪽으로 작용하는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블랙홀 주위에서, 당신은 옆으로 짜부라지는 힘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후, 살이 쪄서 고민하시는 분들, 아주 멋지게 몸을 가늘게 해 주는 기계가 있어요.
역시, 지금 당장 블랙홀로 가시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 정리해 보겠다.
이런 힘을 받게 된다. 주황색 화살표는 안쪽 방향 힘만을 분리해 준 것이다.
그 결과
이렇게 된다.
이렇게 만드는 힘, 즉 중력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힘을 조석력(tidal force)이라 한다.
* 조석력(朝夕力)이란 이름은, 달의 조석력에 의해 지구의 밀물과 썰물이 생기므로 붙여진 것이다.
조석력의 영향에 의해, 질량이 큰 중력원의 가까이에서 물체는 길이방향으로 잡아늘여지고, 그 수직방향으로는 수축된다.
* 물론, 지구와 같은 약한 중력원 주위에서도 조석력은 작용한다.
다만 그 크기가 작아서, 우리가 직접적으로는 느끼지 못할 뿐이다.
조석력에 대한 약간의 장황한 설명이 있었다.
한마디로 줄여서 설명하겠다.
블랙홀로 들어갈때, 그 강한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조석력에 의해 당신의 몸은 잡아늘여지고, 가늘어질 것이다.
* 이는 블랙홀 뿐 아니라, 모든 중력이 강한 천체에서 일어난다.
아마, 이렇게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사망할 것이다.
아아... 살아서 블랙홀을 관람하고 싶었는데.
정말로 아쉽구나.
.
..
...
....
.....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살아서 블랙홀을 관람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사실 이문제는 블랙홀을 이용하는 타임머신에서 꽤나 심각한 문제이다.)
* 이번에도 간편한 설명을 위해 뉴턴의 중력법칙을 이용하겠다.
조석력은 그 거리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길이방향의 경우)
이때, 뉴턴중력을 이용하면 거리에 대한 항이 분모에 들어가게 되는데 따라서 질량체와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조석력은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질량체와의 거리가 멀면 되지 않는가?
그렇다. 그런 해법이 있다.
블랙홀은 그 강한 중력으로 인해 중력수축을 계속하여, 특이점이라는 중심 점으로 붕괴하는데, 이 점은 부피가 없는, 말 그대로 수학적으로 이상적인 점이다.
블랙홀의 모든 질량은 이 점에 몰려있게 되고, 조석력을 고려할 때에는 이 특이점에서의 거리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블랙홀이란 것은,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천체를 의미하며 보통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의 내부 영역을 블랙홀이라 정의한다.
이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중심(특이점)에서 일정한 거리를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구형이다.
사건의 지평선의 반지름은 블랙홀의 질량이 커지면 증가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례한다.)
즉, 질량이 매우 큰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의 반지름은 매우 크고, 이 거리에서는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조석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조금 더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조석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질량에는 비례
사건의 지평선의 반지름은 질량에 비례.
따라서 사건의 지평선에서의 조석력은 질량에 반비례하므로,
질량을 키우면 조석력을 작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약간의 계산 결과를 알려주자면, 자체 중력에 의해 모양이 유지되는 가스(플라즈마) 덩어리인 별은 태양질량의 10의 8승배 이상의 질량을 가진 블랙홀에서는 사건의 지평선까지 접근해도 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 은하 중심부의 거대 질량 블랙홀의 경우 태양질량의 10의 7승에서 9승배의 질량을 가졌다고 추정
사람의 경우에도 같은 계산을 통하여 적절한 질량의 블랙홀을 찾아내고
그런 블랙홀 주위에 접근한다면, 무사히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 한가지 덧붙이자면 무사히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해서 블랙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블랙홀 내부에서는, 어떠한 방법을 써도 특이점에 접근하게만 되어 있다.
따라서, 결국은 특이점에 접근함에 따라 조석력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블랙홀에 들어갔다가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강력한 연구 결과와 믿음이 있거나, 나는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블랙홀에 들어가지 마라.
분명히 경고했다.
휴우.. 큰일날뻔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항성질량 블랙홀인 시그너스 X-1으로 떠났다가 블랙홀 안쪽도 제대로 못 보고 죽을뻔 했어.
이제, 당신은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여 인간이 생존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블랙홀의 질량을 계산을 통해 구하였고, 이 조건에 맞는 블랙홀을 찾아 다른 은하의 중심부로 떠나왔다.
이번엔 좀 긴 여행이 될 것 같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부모와 형제를 모두 데리고 왔다.
블랙홀 밖 안전거리.
"저, 그럼 이만 가볼께요."
당신은 짧은 인사를 남기고 개인용 우주선을 이용해 블랙홀 쪽으로 출발했다.
그리고는, 점점 가까이, 블랙홀로 접근한다.
어떤 현상을 겪을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나도 아직 계산을 해 보지 않아서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몇가지 예상되는 현상을 설명해 보겠다.
조석력의 경우, 당신이 충분한 질량의 블랙홀을 찾았다면 별 문제 없다.
블랙홀로 들어가며 당신은, 편안한 무중력상태를 느낄 뿐이다.
사건의 지평선 매우 가까이에서, 당신은 아마도 호킹복사에 의한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멀리서였다면, 시간 지연효과에 의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블랙홀로 접근하면 할수록, 자신도 비슷한 시간의 흐름을 가지게 되므로 블랙홀 더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제외하면, 블랙홀 안쪽방향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블랙홀 내부에서는 빛 조차 나올 수 없다.
이때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정말로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주위의 이미지들은 모조리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상대론에 따르면, 중력은 빛마저 휠 수 있게 된다.
블랙홀 주위에서는 그 중력렌즈 효과가 강하게 일어나므로, 모든 이미지는 왜곡되어 보인다.
당신이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기 전이라면 블랙홀 안쪽 '방향' 을 바라봤을때, 무언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블랙홀 매우 가까이에 접근한 빛이 휘어서, 블랙홀 안쪽방향에서 오는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사건의 지평선.
특이하게도 사건의 지평선에는 빛들이 '갇힐' 수 있다.
대부분 별이 수축하여 블랙홀이 막 되는 순간 그 표면에 있었던 빛들로, 사건의 지평선을 따라 계속 원운동하는 궤도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며, 당신은 이런 빛들에 의해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는 당신은 빛의 궤도를 가로지르게 되고, 만약 이 매우 짧은 파장을 가진 X-선이나 감마선과 같은 빛이라면 당신은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때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될 것이며, 이 빛이 충분히 밝다면 당신은 빛에 의해 압력이나 열을 받아 레이저로 수술하듯이 잘릴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도 장담은 하지 못하겠으나, 이런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니 블랙홀로 관광을 갈 때에는 조심하기 바란다.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면서 부터는, 만약 당신이 블랙홀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 당신의 앞쪽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블랙홀 내부에서는 모든 물체가 특이점에서 가까워지는 방향으로만 운동하게 되며,이는 빛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만약 당신 우주선의 특이점 방향 속도가 충분히 빠르다면, 근처의 물체들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특이점 방향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이보다 느린속도로 특이점으로 돌진하는 물체들은 당신의 앞에서 당신에게 접근하는 방향으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이점 방향으로 멀리 쳐다봤을때, 보이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반대방향으로 쳐다본다면, 우주쪽에서 오는 빛은 당신의 눈에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중력렌즈 효과로 인해, 원래와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 ETC[잡다한것들]/과학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