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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기원

by 칠칠너래 2006. 9. 15.

 

          글쓴이 jaybird    

  
 

성경을 보면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한다.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이 사탄이란 존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란 말인가?

사탄의 존재를 설명하는 수많은 논리가 있지만,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에 사탄은 하나님이 만든 존재가 아니라면, 하나님 이외의 신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고, 사탄도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하면 역시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불완전한 인간을 빚어놓고, 또 다시 사탄을 보내 타락을 시키게 한 단 말인가? 인간에게는 그것만 해도 억울한데, 다시 하나님은 지옥을 만들어 그런 불쌍한 인간을 영원히 벌한다니......도무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러한 사탄의 기원에 관해 재미있는 견해를 하나 소개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탄 역시 하나님 자신의 일부라는 소리이다.

칼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20세기의 가장 존경받는 사상가중의 한명이다. 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자인 그를 사상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의 정신분석은 인간의 존재연원 자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한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 원형 등의 개념은 그이 놀라운 통찰력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동양사상에 정통한 몇 안 되는 서양사상가 중의 하나였다.

그의 사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자기(self)와 자아(ego)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는 우리의 생각이 닿지 않는 어둠의 세계이고, 무의식의 세계이다. 그러나 자아는 의식과 분별의 세계이다. 그는 인간의 삶을 "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로 파악했다.

분별의 세계인 자아(ego)의 세계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만, 자기(self)의 세계는 그러한 분별이 존재하지 않는 원초적 생명력의 세계이다. 그리고 자기(self)에 해당하는 개인의 무의식속에는 인류의 집단적인 역사적 경험이 함께 녹아 있다고 보았다. 즉 "자기"의 내부 속에는 다른 개인들과 공유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개인적인 자기"의 개념을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 원형 등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는데,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역사와 신화, 종교 속에는 그러한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이 숨어있다고 보았다.

우선 사탄의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그의 이론인 "The theory of equivalence" 를 살펴보겠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자신이 선하다는 "의식"을 지니고 선한 행동만을 할 때, 그는 자신의 악한 본능을 억압을 하여야 한다. 억압된 악한 본능은 그의 무의식속에 누적적으로 쌓이면서 숨어버린다. 억압된 본능은 complex 로 변해, 그의 무의식속에 잠복해 있는데, 결국 그 complex 는 변형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의식의 수면위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원초적인 생명력이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한 방향으로 편향된 생명력은 균형을 잡기 위해선, 스스로 반대방향 움직이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한 부분이 성육화한 모습이고, 사탄은 억압된 본능이 발현된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소리이다. 이러한 융의 사상의 전반에는, 이 세계와 우주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가치중립적인 생명력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동양의 사상과 맥이 닿아있다. 연기적 우주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라는 전체가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주만물은 인과의 그물에 함께 얽힌,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외부와의 상호의존하는 관계 속에서만 함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은 스스로 존재하는가? 빛은 어둠을 배경으로 자신의 밝음을 내 보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빛과 어두움은 상호의존적인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선)의 다른 모습은 악마(악)라는 융의 해석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러나 동양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사상인 것이다.

중립적인 아니면 무가치적인 자기(self)를 의식적으로 한 방향(선)으로 몰아갈 때, 무의식은 그 균형을 잡기위해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융에 의하면 건강하고 균형이 잡힌 존재이다. 에, 왜냐하면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자신의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총체적으로 표출시킨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라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현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소리이다. 그는 사랑도 하고, 자비로운, 그러나 분노하고 징벌하는... 약간은 변덕스러운 하나님 이었다.

이 균형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과도한 선이나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여야 한다. 인간이란 그렇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반인륜적 범죄는 항상 과도한 선 혹은 정의를 주장하는 광신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칼 융의 이론에 다시 한번 수긍이 간다. 왜냐하면 과도한 선을 주장하는 결벽주의자 혹은 원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무의식속에는 억압된 어두운 생각들이 누적되어 complex 를 이루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인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두운 생각은 항상 왜곡되어 기만적인 형태로 의식의 수면위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신의 이름으로 혹은, 정의와 자유의 이름으로 그들은 타인들을 냉혹하게 희생시킬 수 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의식의 수준에서 그들은 확신범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카트리나 같은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악의 무리로 비난하는 것은 그들에게 억압되었던 어두운 본능의 왜곡된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영원한 불지옥 같은 잔인한 상상력을 정당화 시키고, 또 정말로 믿는 행위는 그들의 무의식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란, 억압되고 어두운 병리적인 complex 의 변형된 발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과도한 선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자에게 정상적인 인간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마적 성향"이 튀어 나오는 것은 정신분석상 너무나 당연한 일 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일부 타락한 기독교인에게만 해당되는 소리이다. 구원이라는 보상을 전제로 갖는 기복신앙은 예수님이 뜻 한바가 아니었다. 구원은 이타적 사랑을 할 때 일어나는 자아(self)의 확장감의 형태로, 즉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지, 의식적인 선행의 보답으로서 찾아오는 "보상"이 아님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타적인 사랑은 자기(self)의 외연적 확장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건이 달려있는 이기적인 사랑은 자아(ego)의 확장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ego 의 확장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선민사상이다. 이들에게는 신이 “소유되는”, 즉, 그들만의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민사상의 배후에는 타인에 대한 배척과 무서운 복수심이 웅크리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불신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인 것이다.

사랑의 신을 믿는 배후에는 이러한 반-사랑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분석은 우리에게 인간의 본성과 존재양식 자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독사상의 본질인 예수의 이타적 사랑은 부처의 가르침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도화하고 도그마화한, 즉 인간이 만들고 소유한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약점이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이 진정한 신앙을 지닌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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