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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와 자본주의에 대한 小考 2

by 칠칠너래 2005. 10. 3.

에너지와 자본주의에 대한 소고(小考)  (2)
카오스 이론의 효용성과 한계는 무엇인가 
                                                   


   역사란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
   그리고 불행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에드워드 기본 (1737~1794) 
 
    History is indeed little more than the register of the crimes,
    follies and misfortunes of mankind. 
                                              - Edward Gibbon, 1737-1794 

 


   다른 영장류(Primates)들도 아주 드물게 자해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만큼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자해 행위를 즐기고,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파괴하는 종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먹물의가면 
 

 

두 번째 이야기 - 카오스 이론


서프 운영진이 지난 21일 글에다 「야만의 시대 ? 20세기를 넘어서」 라는 부제를 달아 주었군요.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부제입니다.
에너지와 자본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들어가기로 맘 먹으면서, 스스로 느끼는 어떤 중압감이 우리가 나눌 대화의 부제목까지 생각할 여유를 가져간 모양입니다. 지금 다시 부제를 단다면 아마 「진정한 휴머니즘의 시대를 위해」 정도를 생각할 것입니다.
20세기가 인간의 수많은 야만적 행태를 노정시킨 부끄럽고 슬픈 세기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20세기만의 이야기도 아니며 20세기의 전부인 것도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나눌 이야기의 논점은 지난 세기의 야만성을 재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에너지와 자본주의가 어떤 상관 관계를 가지고 성장하였으며, 지금 그것들이 우리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인류의 지속적 생존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나아가 우리에게 현재의 에너지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나 대응 전략은 존재하는가 등이 될 것입니다.


자, 이제 그 토의의 두 번째 주제인 카오스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에너지와 자본주의에 대한 소고(小考)』라는 글에 무슨 카오스 이론을 들먹이냐고 의아해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문명은 생태계의 종속변수 (그 반대가 아니다)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는 생태계의 수많은 거주자 같은데 하나의 종(Species)에 불과합니다.
생태계, 영어로 ecosystem이라는 말은 무수한 거주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전 지구적 생태환경(global ecological environment, eco-environment)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대,중,소분류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구의 모든 공간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생태계이며, 이런 의미에서 사하라 사막이나 남극과 같은 극지, 그리고 대양(ocean)의 가장 깊은 심연인 마리아나 해구(약 -11,000m)나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생태계들과 그곳에 거주하는 다양한 거주자들의 상호 작용과 생존 조건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며 그 미래를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러한 계(界, system)를 흔히 복잡계(complex system)라고 부릅니다. 복잡계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많은 변수들에 의해 다이내믹하게 변화합니다.
이러한 것을 동력학적 변화(dynamical change)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동력학적 복잡계는 정확한 주기를 가지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며, 비주기적 행태(Aperiodic 또는 non-periodic behavior)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세계, 즉 생태계는 선형적 수학(linear mathematics)이나 선형적 물리학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는 선형적 시스템(linear system)이 아니기 때문에, 비선형적 시스템(nonlinear system)이라 부릅니다.


요약하면, 모든 생태계는 비선형적, 동력학적 변화를 갖는 복잡계로 비주기적 행태를 보이며,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기가 대단히 곤란한 것입니다.
그런데, 카오스 이론의 학문적 정의 역시 [결정론적 비선형 동력학 시스템들에 나타나는 불안정하고 비주기적인 행태에 대한 정성적 연구] 라고 요약 할 수 있습니다. ( 따라 오시는 거죠^-^-^ )


인간,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이 생태계에서 왕초 노릇을 하고 있는, 스스로 임명한 지구촌 거주민 대표이며, 이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래, 바로 에너지인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생존 양식을 묘사하는 현대적 용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입니다.

인간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 온 역사를 돌이켜 보거나, 그 미래를 관측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다양한 사고의 틀과 분석도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라는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난 어떠한 접근 방식이나 분석 도구(approach methods and assessment tools)도 불완전하며 오류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입니다.


생태계의 속성들은 그것들이 다이내믹하게 변화하는 복잡계(dynamical complex system)이며, 비주기적 행태를 보이는 비선형 시스템인 동시에, 예측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결정되는 결정론적(deterministic) 시스템, 즉 카오스 시스템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류의 현재 상태에 대한 해석과 미래 상태에 대한 예측을 위해 카오스 이론의 일정한 연구 성과를 이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라면, 카오스 이론은 의미 있는 새로운 과학의 지평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카오스 이론의 효용성과 한계


지구 생태계를 카오스 시스템으로 보는 논의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명확히 인식하고 지나가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이 아직도 초기 형성 과정에 있는 이론적 모색이라는 사실입니다.
최근 많은 조명을 받고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의 유수 대학들이 “비선형 동력학과”같은 이름으로 카오스이론 연구 학과들을 개설하고 있지만, 아직 온 길보다 갈 길이 창창하게 먼, 학문적으로 미성숙 분야라는 것입니다.

카오스 시스템이라고 규정된 계를 완벽하게 해석할 수 없을 뿐더러, 통합적인 이론이나 실용적 법칙 등이 발견된 것도 없습니다. 카오스 시스템에 대한 해석도 완벽하지 못하며, 무슨 문제 해결 능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니란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유명 대학 출신의 수재들이 카오스 이론을 이용하여 주식 시장의 행태를 해석하고 떼돈을 벌 수 있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지만, 그들도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초기조건들과 변수들을 새로운 수학적모델로 정의하고, 월 스트리트(Wall Street)를 “스팅 Sting”할 목적의 분석틀과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지만, 그런 것들이 실제 데이-투-데이 트레이딩(day to day trading)에 사용되어 누군가를 빌 게이츠 정도의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습니다.


카오스 이론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 에드워드 로렌쯔(Edward Lorenz)라는 기상학자가 대기의 움직임을 유체역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로렌쯔 어트랙터(Lorenz attractor)라고 불리는 비교차(非交叉)곡선의 무한 반복에 의해 생긴 미묘한 형태를 발견한 이후의 일입니다.
이후, 카오스 이론의 시각적 꽃이라 할 수 있는 프랙탈 기하학(Fractal geometry)을 꽃 피운 만텔브로트(Benoit Mandelbrot) 등에 의해 카오스 이론은 분명 자연에 대한 인간의 시각을 한 차원을 높이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렇다해도, 현재 시점에서 “에너지와 자본주의” 라는 전세계적 시장 동태를 카오스 이론이 그럴듯하게 해석해 주고 나아가 어떤 신뢰성 있는 예측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입니다.


우리는 에너지 시장과 자본주의라는 시장 질서의 실체적 과거와 현재의 동태(dynamic behaviors)를 고찰하고, 여기에 부족한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현재 상황(초기 조건) 변수들을 감안하여, 비교적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읽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토의는 순수한 과학적 토의라 하기 힘들고, 다만 어떤 과학적 개념을 준용한 사회 철학적 상상에 가까워 질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카오스 이론의 학문적 미성숙에 기인한다기보다 이글을 쓰는 저 자신의 지식과 사고능력의 한계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논의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관찰 때문입니다. 


1. 인류라는 개체수의 폭증은 생태계적 위험 신호이며,
그 행태(human behaviors)는 과거나 현재 그렇듯이, 미래에도 카오스 시스템적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시스템의 결정론적 미래(deterministic future)를 예측하는 것은,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일보다 분명히 더 힘든 작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 좋은 수재들이 주식시장이나 선물시장 털어보려는 프로그램들은 만들어도 이런 각도의 프로그램은 만들지 않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나쁜 머리로 몇 배 더 많은 변수들을 가지고 일단 도전하고 보는 제 모습이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와 닮았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습니다. ^-^ 


2. 식량이나 물과 달리, 에너지는 열역학 제1법칙(The First Law of Thermodynamics)에 의해, 자본, 노동 또는 기술에 의해 “창조 create” 될 수 없는 자원입니다.
세계 경제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100%” 에너지 종속적인 것입니다.
에너지는 그 정의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인 것입니다.
(Energy is the capacity to do “work”)
다시 말해, 에너지가 없으면 “일”이 없고, “일”이 없이 경제적 가치 생산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특히 지난 140년간 산업적으로 채굴되어 온 석유는 지금 문명 세계 전체를 지탱하는 에너지 총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재창출이 불가능한 에너지 자원입니다 (Non-renewable energy resources). 
이 자원은 다시 채워지지 않는 것이며, 만들 수도 없으며, 지금 석유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다른 재창출이 가능한 에너지(Renewable energy), 즉 다른 대체 에너지들로 교체할 수 있는 일은 대단히 요원한 일이며, 동시에 엄청난 시간과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 투입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약 50년 전부터), 많은 지질학자와 석유 산업 전문가들, 그리고 최근에는 거대 에너지 기업조차, 전 세계 석유 최대 생산량(Oil Peak)의 시점을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의 어떤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오일 피크가 무엇인가는 다음 토의에서 자세히 논할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음모론이나 종말론적 유언비어가 아니며, 세계 주요 정치인들이 잘 인식하고 있는 사실(fact)인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그런 말을 좀체로 대중에게 하지 않는다는 것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현재 에너지 문제의 핵심은 석유의 수요 공급 문제입니다.
소모량은 개발과 발전이라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명목 아래 계속 증가하는데 반해, 석유자원의 생산량은 이미 그 최대치에 도달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오직 계속 감소하는 길만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유가가 얼마나 더 올라 가느냐 또는 언제 무슨 이유로 어느 정도 떨어 지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급의 절대량이 부족한 시점에 도래했다는 것,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갑자기 창궐한 메뚜기 떼에게 뜯어 먹을 풀이나 나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 코 앞에 다가 온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일입니다.
메뚜기 대장들은 어떤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어차피 대책이 없는 일이라면, 미리 죽음의 공포를 확산할 필요도 없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한편, 대중 메뚜기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전투적으로 먹어 치울 것을 격려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메뚜기 떼의 생태학적 해석 역시 카오스 이론이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본주의 경제는 그 상대적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무한경쟁을 옹호하고 사회적 다윈니즘(Social Darwinism), 즉 사회적 적자생존의 법칙을 옹호하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학설들이 있고 입장이 다른 경제 학파들이 있지만, 시각과 학설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 하여 그들의 입장에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큰 결정론적 차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카오스이론이지만,자본주의에 내재된 보이지않는 어리석음의 작동체계 (Operational System of Invisible Follies)는 그러한 사소한 차이들을 과감히 무시하고 나가는 근본적인 교리이며 동질성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평등한 기회와 공존공영을 외치지만, 내막은 여러 시장의 권력에게 더 많은 자원과 부가 집중되지 않을 수 없는 체계이며, 그 시장 권력들의 주체는 자본, 식량, 에너지 그리고 기술과 전쟁 무기 시장을 독과점 하고 있는 세계적 거대 기업들인 것입니다.
특히 에너지는 그 속성 자체가 다른 모든 산업을 지배할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독과점한 시장 권력이 사실상 절대 반지를 소유한 가장 강력한 권력이 되는 것입니다.
경제가 정치 권력 관계의 종속적 지위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후진국의 경우), 사실은 정치 권력이 전세계적 시장 권력의 막강한 원심력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보다 정확한 현실 인식일 것입니다.
비록 이런 시각에 대해 정치 권력은 기분 나쁜 척하고 시장 권력은 겸손한 표정으로 당혹스러움을 연출해도, 그것은 대중에게 보이기 위한 외관일 뿐입니다. 속아 넘어 가지 않기 힘든 연출력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속으면 안됩니다.


오일 피크(Oil Peak)와 에너지 아포칼립스 (Energy Apocalipyse)


만일 오늘 당장 오일 메이저가 시장에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하면,
그 날로(실제로는 각국별로 전략적 비축량과 자체생산 능력이 어느 정도 소진된 다음) 모든 운송수단들과 무기체계가 주저 앉아 움직이지 못하고,
모든 산업이 동시휴가를 즐겨야 하고,
모든 극장들은 문을 닫고 슈퍼마켓에 배달될 물건은 아무 것도 없으며,
채소나 생선은 산지에서 썩어 가고,
콤바인은 고철이 되고 고깃배는 깡통이 됩니다.


사람들은 정원의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려고 하나 우선 난로를 사야 하고 난로는 희귀 아이템이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모든 아파트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칸막이에 불과하고, 감기 걸린 아이는 병원이 정전되어 집에서 얼음 찜질이라도 해야 하는데, 냉장고에선 얼음은커녕 썩은 음식 냄새만 진동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통이 된 전화를 들고 가까운 사람의 소식을 몰라 발을 구르고, 인터넷이나 우리 서프는 찢어진 만화책만도 못한 옛 이야기가 됩니다.
인류 최후의 악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개발과 발전의 미명 아래 흥청거리며 퍼올리고 낭비한 석유 에너지 베이스의 자본주의가 가까운 장래에 당면할 에너지 아포칼립스(Energy Apocalypse)의 서막에 불과한 것입니다.
유력한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이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실정을 모르거나 체제의 치명적 급소를 몰라서 매일 성장과 발전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러니지만, 사실 이러한 끔찍한 시나리오를 재촉하는 거대한 북소리의 하나는 바로 중국과 인도 같은 거대 인구 국가들의 빠른 자본주의 편입과 급속한 경제 성장, 그리고 그들의 산업화에 의해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 시대 대중의 다수는 근거 있는 경고보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중의 경향이 태생적 성향인지 또는 조직된 훈련에 의한 것인지를 살펴 보는 것도 매우 흥미있는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인은 물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까지 진실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이득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인식을 갖고 자신의 직업이 요구하는 흥행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먼저 말씀 드린 Oil Peak는 바로 에너지 아포칼립스로 진입하는 음울한 전주곡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민중들은 그 동안 자본주의가 눈부시게 팔아 온 환상, 즉 무한 성장과 영원한 발전이라는 환각에 빠져, 저마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계급에 진입하기 위해 문명의 정글을 개미처럼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각을 가장 강력하게 광고 선전하며 팔아 온 나라는 물론 미국입니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미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세계 에너지 자원의 집중적 매점과 강탈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 침공은 그러한 맥락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미국은 체질적으로 가장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강력한 메뚜기 떼이며, 지금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에너지 기근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초지(草地)
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에게 큰 정치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는 주한미군의 철수 역시 미국이란 메뚜기 떼의 새로운 초지 확보를 위한 방향 선회 움직임의 일부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한 미군의 철수와 전세계 해외 주둔 미군 병력의 재배치, 그리고 국방성의 군사 전략의 변경 등은 모두  근본적으로 미국의 에너지 전략에서 출발하고 에너지 전략에서 끝나는 것이며, 미국의 정치, 금융, 에너지, 군산복합체 권력 들의 합리적 자원 재배치 전략일 뿐이지, 한국인의 반미 감정 같은 것에 대응하는 감정적 조치의 차원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여야 합니다. 


5. (그 내부에 또 다른 갈등과 내분의 불씨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국의 집단이기주의는 필연적으로 다른 강력한 국가 권력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충돌의 와중에서 지금의 블록화된 경제권은 필연적으로 재편 조정될 것이며, 충돌과 충격에 의해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의 운명 또한 좋든 싫든 변화할 것입니다.
그런 변화는 미래 인류와 생태계의 운명을 크게 변화 시킬 것이며,
이러한 복잡계 내지는 카오스적 현상을 카오스 이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설명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는 카오스 이론을 불가피하게 개입시키며 토의에 들어 가는 것입니다.


카오스 이론,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집합적 우리가 갖고 있는 실효적 인식 능력의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물리적 현상들의 초기 조건 민감성의 존재와 의의를 밝히고 나아가 그러한 변수들이 그려 낼 4차원 형상의 한 두 단면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마저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끝내고,
다음 글에서는 몇 가지 카오스 이론의 개념과 흥미 있는 프랙탈(Fractal)들을 소개한 다음,
인간 생태계의 에너지 측면 초기 조건 상황을 고찰하는 의미에서“오일 피크(Oil Peak) 또는 미국의 국가에너지정책(National Energy Policy - NEP)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