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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와 자본주의에 대한 小考 3

by 칠칠너래 2005. 10. 3.

에너지와 자본주의에 대한 소고(小考)  (3)
세 번째 이야기  미국의 국가 에너지 정책 (NEP)


카오스와 코스모스


만일 카오스를 혼돈(混沌과 莊子의 渾沌은 다른 것인가?)이라고 생각하고 코스모스를 질서라고 생각한다면, 이 두 개의 단어는 하나의 대상이 가진 두 가지 속성을 표현하는 수사(修辭)일 뿐인가, 아니면 다른 속성을 가진 두 가지 대상을 각각 정의하는 말인가?
카오스적 우주와 코스모스적 우주가 따로 있는 것인가?


인간은 종종 신을 흉내 내고 싶어 한다. 그래선지 때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는 말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최소한 과학적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은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따라서 과학은 기본적으로 비종교적 학문이며, 나아가 종교적 창조를 부정하는 반종교적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검증할 수 없거나 검증되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과학자들도 그 말년에는 대부분 일정한 종교적 성향을 갖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다는 종교적 창조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자신이 이해하는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우주적 섭리에 대한 깊은 외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그만 개집을 지으려 해도 수월찮은 재료와 생각 그리고 노동이 필요한데, 하물며 유변(有邊)한지 무변(無邊)한지 계측할 수도 없는 이 우주의 존재와 운행이 어떤 설계자의 존재도 없이 원래 그곳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은 드물지 않겠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어떤 합리적 과학자의 지적 오만도 알 수 없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외경심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이 든 유리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푸른 잉크는 아름다운 추상적 형태를 만들어내며 퍼져 간다. 만년필 펜촉 끝에 질서 정연한 구슬 모양으로 맺혀 있던 잉크 방울이 중력의 작용에 의해 타원형 구체로 변하고, 이내 컵 속에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 진 다음, 중력과 무관한 움직임을 보이며 춤추듯이 퍼져 나간다.
우리는 이것을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이라고 불리는, 잉크 입자와 물 분자의 운동과 충돌이 일으키는 움직임이라고 배워 알고 있다.
그러나 1827년 로버트 브라운이라는 영국의 식물학자가 꽃가루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꽃가루 입자가 자유롭게 운동하는 공기 분자 (그의 현미경으로 공기 분자를 볼 수는 없었겠지만)와 충돌하여 계속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 그리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왜 물속에 떨어 진 잉크 방울이 그런 현상을 보이는지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잉크 방울의 움직임은 카오스적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 잉크와 물이 충분히 혼합되어 균일한 색상을 보이며 안정되어 있을 때, 아마도 그 가시적 평형 상태를 코스모스적 현상으로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잉크 입자는 펜촉에서 떨어져 물과 섞이기 시작한 이후, 물과 완전히 혼합된 다음에도 계속 물 분자와 충돌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충돌과 움직이는 모습에는 아직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코스모스적 질서도 없으며, 혹 물을 끓이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상호 충돌과 변이는 더욱 이해하기 힘든 카오스적 운동으로 변한다.
과연 잉크 입자가 만년필 속이나 잉크 병 속에 있을 때에는 코스모스적이고 물에 섞이거나 끓고 있을 때에는 카오스적인 것인가.
우리는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잉크 입자나 물 분자나 그 존재적 구성이나 물리화학적 양태(behaviors)가 어떻게 변하든 명확한 원칙과 질서를 따르며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런 원칙이나 질서의 어떤 부분을 아직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능력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그러한 존재 양식이나 행태가 본질적으로 코스모스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우주가 코스모스라면 그 안에 속한 모든 것은 코스모스적일 수 밖에 없으며, 우리가 코스모스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를 상상할 수 없다면, 우리는 코스모스적인 것 이외의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혼돈이나 카오스 또는 카오스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코스모스적 세계에서 (아직) 이해할 수 없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명칭이나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허블 망원경이 지금까지 찍어 보낸 우주 저 깊은 곳의 수많은 영상들은 음미할 때 더욱 강력한 심증이 된다.
수많은 은하들의 모습이나 별의 소멸과 탄생 등을 보여주는 허블 망원경의 영상들을 보며, 이 우주가 코스모스적인지 카오스적인지 생각해보면, 종국에는 카오스적인 것이 코스모스적인 것의 부분 집합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상상하기 힘든 빅뱅조차 그 어떤 코스모스적 질서와 통제 아래 일어 난 하나의 당연한 이벤트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은 이렇듯,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코스모스적 인식론을 이용하여 설명하거나 이해 하기 힘든 시스템 (예를 들어, 기후, 종의 흥망, 주식 시장의 움직임, 해안선의 형태 등등...) 들에도 모종의 수학적 질서가 존재하며, 나아가 그러한 질서가 모든 카오스적 시스템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연의 힌트가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와 때를 맞춰 주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프랙탈 기하학은 그러한 질서의 모습이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할 것이라는 또 다른 예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마도,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카오스적 현상이나 시스템들을 단 칼에 설명해 줄 과학적 발견은 없을 것이다.
자연과 우주는 그 주재자가 누구이든 인간과 그렇게 맥빠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류 또한 그 주재자에게 “이제 이 지루한 게임 그만하고 모든 것의 정체를 밝히라”고 떼 쓸 정도로 조급한 어린 아이는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과의 주사위 놀이는 계속 될 것이다”.
신을 죽였다고 믿는 인간이 그 또한 스스로 자살하지 않는 한.
(나의 이러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류의 문명 역시 카오스적 시스템으로 보아 큰 무리가 없다.
그것은 늘 비선형적이며 동력학적인 변화를 보였었고, 크게 볼 때 흥망의 주기는 있었으나 그 주기는 시공간적(space-temporal) 주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문명의 그 어떤 사건(event)도 정확하게 반복된 일은 없다.
모든 문명은 또한 어떤 예측하기 힘든 결정론적 귀결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한 카오스적 시스템으로서의 문명이 결국 코스모스적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 우리의 후손이 그 찻잔을 들어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찻잔에 새로운 물을 따르기 전까지는.


논의의 전개를 위해 다소 비약하는 점이 있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좌우지간, 지금 이 순간의 세계 문명, 즉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카오스 시스템을 무어라 부를 것인가.
아마도 부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또는 팍스 유에스에이(Pax USA)라고 부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팍스(Pax)란 로마 신화에서 평화의 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지금은 부시의 지배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갈등”의 국면이므로, 최대한 중립적으로 부른다해도 “마르스 유에스에이”(Mars USA) 정도가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팍스든 마르스든 간에, 지금의 문명 세계에서 절대 반지적 힘을 발휘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자가 미국이라는 존재인 것은 분명한 듯 싶으니, 그들이 가까운 장래 그리고 종국적으로 어떻게 코스모스적 질서로 돌아 갈 것인지를 고찰하는 것이 본 논의의 초점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제 카오스니 코스모스니 하는 것은 잠시 잊고, 이 문명의 특징과 성격을 에너지라는 동력과 자본주의라는 추진체를 중심으로 살펴 보도록 하자.


미국의 에너지 정책 (National Energy Policy)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거의 국지적 자급형 경제 정책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미국은 석유든 석탄이든 다른 나라에 의존해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체 부존 자원이 풍부한 국가였던 것이다.
 
“자이언트 (Giant)”라는 흘러 간 영화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은 텍사스 어느 목장 근처에서 치솟아 오르는 석유에 샤워를 하고 미쳐 날뛰던 젊은 제임스 딘(그가 늙었던 적은 없으니)을 기억할 것이다.
텍사스의 대규모 유전들은 엘도라도를 찾아 서쪽으로 봇짐을 싸던 카우보이의 시절을 끝내고, 20세기 미국에 새로운 시대를 연다.
미국의 산업화와 현대 자본 권력의 동력이 텍사스 벌판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국부를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것으로 끌어 올리는 견인차였던 동시에, 어쩌면 미국의 칼비니즘적 자본주의 전통을 속으로부터 부패시킨 졸부(nouveau riche)들의 시대를 여는 지옥의 열쇠였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Giant는 거대 유전을 뜻하는 말이다)


1900년 미국의 석유 총생산량은 연간 1억 5천만 배럴 수준이었다.
당시 미국이 소모하는 에너지 총량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였으며 석탄이 74%, 나무가 23%였다.
2003년 미국의 연간 석유 총생산량은 약 32억 배럴(일산 880만 배럴 기준) 이다. 그러나 이제 이 어마어마한 32억 배럴도 미국의 연간 석유 총 소요량의 45%가 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이제 연간 73억 배럴 정도의 석유를 소비하는 나라이며, 그 중 56%를 해외에서 순수입해야 하는 국가인 것이다.
총 에너지 부존 자원, 총 소모량, 총 수입량 모두 세계 최대인 것이다.
[현재 석유(원유)는 현재 미국 총 에너지 소비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천연 가스가 23%, 석탄이 23%, 핵발전 8%, 수력 발전 3%, 그리고 대체 에너지들이 약 3%라고 한다]


 
석유가 미국 에너지 공급량의 40%를 차지하며, 그 중 5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해야 하고 따라서 석유 자원 확보가 미국 경제에 결정적 중요성을 가진다 등도 의미 있는 관찰이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을 요구하고 싶은 포인트는 좀 다른 것이다.
미국의 모든 경제 산업 활동, 그리고 그들의 문화 및 생활 양식이 석유라는 에너지 자원을 중심으로 구축된 것이지만, 특히 그들의 거의 모든 운송 수단들이 석유라는 자원에서 생산된 연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우리도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미국의 막강한 전쟁 수행 능력의 중추를 구성하는 전쟁 기계들 ? 탱크, 항공기, 헬리콥터, 군함 등이 거의 모두 석유 의존형이며, 따라서 석유는 미국의 안보와도 직결될 수 밖에 없는 자원이라는 점이다.

 


1950년대에 미국의 King Hubbert라는 당시 최고 권위를 자랑하던 석유 지질학자는 미국의 남부 48개주(알래스카 이남의 미국 본토)의 석유 자원이 1970년에 이르면 최대 생산량(peak)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그의 예측은 현실과 거의 100% 일치하는 정확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라고 부르는 제임즈 딘의 자이언트 유전들은 이미 그 생산량이 피크를 지난지가 30년이 다 되어 가는 “말라 가는 우물”들인 것이다.
이 우물들은 그 전성기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산업화와 거대 자본 생성에 절대적 기여를 하고 이제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다.
 
이들 유전이 아직도 생산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시점에서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제성은 석유의 질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것과 미국이라는 밑 빠진 독 같은 시장의 수많은 정유 공장들 바로 옆에 위치한 우물이라는 것에 기인한다.
 
미국은 텍사스 이외의 여러 주에서 석유를 채굴하고 있으나, 멕시코 만의 해저 유정들과 알래스카 푸르도베이(Prudhoe Bay) 인근 자이언트 유전들의 원유와 가스를 제외하면 대개가 질적으로 텍사스만 못하며, 양적으론 이미 고갈되었거나 급속히 고갈되어 가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즉 자원은 고갈되어 가는데 미국의 소모량은 90년대 후반 큰 폭으로 증가하며 앞으로도 그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석유라는 에너지 자원을 기축으로 하여 세계 최강으로 성장한 미국의 경제와 안보가 바로 석유 때문에 근본적으로 위협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국인들은, 아니 미국의 일부 기득권들은 언제부터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을까. 


사실 석유라는 자원으로 인해 전쟁을 도발하고 수행한 미국 대통령은 부시 부자가 처음일 것이다.
(루즈벨트는 석유를 이용해 태평양 전쟁을 불렀고 2차 대전에 참전할 정치적 기회를 잡았지만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외 석유 자원의 원활한 접근과 미국으로의 수입이 위협 받는 상황이라면 전쟁을 사양치 않겠다는 정책은 공식적으로 카터 대통령이 수립한 에너지 안보 정책이었다.
 
지미 카터는 1980년 1월,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구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자, 소위 “카터 독트린”이라고 불리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 골자는 페르샤만 주변 산유국의 원유 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며, 이 카터 독트린은 이후 미국 행정부 에너지 정책의 한 골간을 이루게 된다.
 
이 정책에 따라, 미국은 1987년과 1988년 쿠웨이트 오일 탱커들을 이란의 미사일 및 초계함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으며,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치는 정치적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2001년 부시가 취임 선서를 할 무렵만 해도, 부시 머리에 그가 그 해 9.11사태 이후 최근까지 펼치고 있는 수많은 깡패 짓(부시는 외교 정책이라고 부른다)들에 대한 플랜이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아마도 부시는 미국 각지에서 경험하고 있는 석유나 가스 부족 사태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심심찮게 일어 나는 정전 사태 등을 고려해서, 중동 국가들을 비롯한 해외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석유를 미국 시장으로 끌어 오느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도 골이 빈 부시의 이야기일 뿐, 부시 행정부의 각료나 소위 네오콘들의 생각은 처음부터 달랐다.
 
한 예로, 부시의 에너지 장관인 스펜서 아브라함은 2001년 3월, National Energy Summit(미국 국내 에너지 관계자 회의) 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미국은 향후 20년 중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미국의 경제적 번영이 위협 받고, 국가 안보에 문제가 있으며,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바뀔 것이다”


좌우지간, 부시는 2001년 초, 미국의 장기 에너지 수급 계획에 책임 있는 정부 고위 관리들로 구성된 “국가 에너지 정책 개발 그룹”(National Energy Policy Development Group, NEPDG)이라는 정책 태스크-포스 팀을 발족시켜, 자신의 가장 가까운 정치 자문이기도 한 부통령 딕 체이니가 책임지도록 한다.
 
전직 국방장관이고 공화당 골수 멤버인 딕 체이니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00년까지 유전 용역 업체인 “핼리버튼사 Haliburton Co.”의 최고 경영자였으며, 그가 엔론(Enron Corp.) 등의 에너지 거대 그룹 최고 경영자들에게 정책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가 봐도, 미국의 에너지 정책에는 두가지 거시적 선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여 궁극적으로 이미 심각한 해외 석유 의존도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재창출이 가능한 에너지원들을 개발, 확대하며 석유 의존도를 낮춰 가는 길 뿐인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하는가는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와 안보에 중대한 차이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즉 미국이 종래의 에너지 정책을 수정할 경우,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의 개발과 수송 기술 등의 개발을 위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게 되며, 이에 따라 죽는 산업과 새로 일어 나는 산업들이 생기게 되며, 근본적으로 전체 산업의 재구성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사람들의 일상 생활 양식과 경제 전체에 대한 충격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전 세계 석유자원의 피크(Global Oil Peak)가 어차피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시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불가피하게 직면하고 넘어 가야 하는 충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 정부 자체 데이터에 의하면, 2004년 1월 현재 미국의 석유 확인 매장량은 227억 배럴이다. 그런데 미국의 2003년 석유 소비량은 하루 2천만 배럴이다.
즉, 미국의 확인된 석유 매장량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채굴해 쓴다고 해도, 현재의 소비량이라면 3년에 할라스(땡)인 것이다.
 
옛날에 1배럴을 쓰는 동안 5배럴의 새로운 석유가 확인된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5배럴 쓸 때 1배럴의 새로운 석유를 발견하기 힘든 시절이다.
그 동안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원유가격이 떨어지면 감소하고 원유가격이 회복되면 올라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1999년 3월 이후, 국제 원유가격은 전반적으로 반등하였지만, 미국의 생산량은 오히려 감소세를 보이며 5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 ?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의 전략적 석유 비축량은 현재 일일 소비량으로 계산하면 대략 32일치에 불과하다. 한국은 대략 90일치를 가지고 간다. ^-^)


과연 딕 체이니가 제출하고 부시가 검토한 다음 미국의 “국가 에너지 정책 NEP” 이라고 명명되어 2001년 5월 17일에 발표된 NEPDG의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신보수가 아니라 전형적인 “꼴통보수”들의 에너지 정책이었다.
 
체니 리포트라고 불리는 부시의 NEP 서두는 마치 수입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재창출이 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선호하는 척 하는 인상을 주지만, 내용적으로 석유 소비를 감축할 수 있는 실질적 정책제안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북극권 야생보호구역(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에 속하는 알래스카 북부의 석유 자원을 더욱 가열차게 개발하여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말일 뿐, 석유 소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체 에너지 개발 확대에 대해서는 “난 몰라~묻지마” 정책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 생산의 장기적 감소가 기정 사실인 상황에서, 체이니 보고서의 그 따위 헛소리는 부시의 소위 “에너지 독립국” 명분 쌓기에 불과한 말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며, 따라서 체이니 보고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책은 해외 석유 의존도를 항구적으로 증대해 나가겠다는 정책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미국의 원유 수입국 현황

 


도표에서 볼 수 있듯,멕시코,베네주엘라,걸프만산유국,캐나다,북해산유국,나이제리아 등이 미국에게 원유를 제공하고 있는 주요 국가들이다.
이 중 멕시코와 베네주엘라 등은 이미 오일피크를 지나 거대 유전들의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캐나다는 미국 천연 가스 수입량의 90% 가까이를 조달하고 있는 나라지만, 원유의 경우, 재래식 유전은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오일 샌드(Oil Sand)에서 추출되는 원유는 환경에 거의 재앙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나이제리아나 앙골라에 최근에도 상당액의 원조와 잉여군사장비 및 무기들을 대주며 구워 삶고 있는 중이지만, 일이 미국 뜻같이 술술 풀려 나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비싼 돈 내고 북해산 브렌트유 사서 쓰는 것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저것 빼고 보면 지구상에 그나마 안정적으로 석유 뺏어 올 곳은 페르샤만 국가들과 카스피해 유전 인접국들 밖에는 없는 것이다.
 
체이니 보고서는 이러한 국가들을 위주로 미국이 어떤 외교 및 군사적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를 적어 놓은 것이다.
물론 언어야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잘 순화된 용어, 예를 들면 원활한 통상관계니 투명한 계약 절차니 하고 써 놓았지만, 본질은 어떻게 미국의 오일 메이저들이 그러한 곳에 묻혀 있는 석유 자원에 대한 선취득권을 갖게 할 것이냐이며, 그 목적에 합당한 군사 외교적 전략인 것이다.


그리고 9.11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9.11 사태 직후, 이미 부시 행정부 네오콘 사이에선 아프카니스탄 침공 계획보다 먼저 이라크 침공의 일정이 세워져 있었다는 것 아닌가.


오늘은 이 정도에서 쉬고, 다음 글에선 카스피해 유전과 이란, 리비아 등의 상황을 간단히 살펴 본 후, 미국의 국가 에너지 전략이 석유 소비를 감소시키며
대체 에너지 확대 방향으로 설정되지 않은 이유, 즉 오일 메이저들과 군산 복합체, 그리고 미국 의회와 행정부 간의 먹이 사슬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