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모든 존재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산법(算法)으로 그 가격(상대적 가치)을 결정하나 그것이 언제나 그 내재적(본질적) 가치에 상응하거나 옳은 가격인 것은 아닙니다. 유가가 어제 20불이든 오늘 60불이든, 그것은 석유 자체의 본질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1 캐럿에 10만불 하는 다이아몬드라도 생존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면 아이들 유리구슬만도 못한 것이며, 1리터에 1000원 하는 물이라도 생존과 관계 있는 것이라면 생명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석유 역시 생존에 필요하다면 10만 불이라도 지불해야 하며, 필요 없는 존재라면 1불이라도 비싼 것입니다. 유가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것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며..
엑슨모밀(ExxonMobile)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이익을 구현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작년 한 해 253억불의 이익을
냈습니다. 전 세계 최대 오일 메이저다운 이익 규모입니다. 전 세계 기업군 가운데 작년에 시현한 이익규모 7위까지의 기업 가운데 4개 기업이
오일 메이저들입니다. 엑슨모빌과 더불어 로얄더치쉘(Royal Dutch Shell), 비피(BP), 그리고 쉐브론(Chevron)이 그들로,
이들의 작년 이익 총계는 728억불입니다. 이것이 모두가 아닙니다.
금년 들어 더 고공 그래프를 그린 유가에 힘입어 모든 메이저 오일이 더 큰 이익을 시현하고 중인데, 지난 2분기만 볼 때 그들의
이익 규모는 엑슨모빌이 76억불, 로얄더치쉘이 52억불, 쉐브론이 37억불 등입니다. 이들 거대 기업은 석유 수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들이
고유가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예상대로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익 기록을 경신하는 중입니다. 엑슨모빌은 아무리 못해도 연말에는
300억불의 이익 달성이 무난해 보입니다.
이런 거대 에너지 기업들을 염려하여 부시 행정부는 얼마 전 새로운 에너지법안을 통과시켜 그에 따른 145억불 규모의 감세 혜택
대부분이 이들에게 돌아가게 해 주었습니다. 미국의 정치 참여 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부시가
대통령이 된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공화당이 거두어들인 정치헌금의 79%가 이들 에너지-가스 관련 기업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잘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카트리나가 몰고 온 재앙 구제를 위해 엑슨모빌이 얼마나 기부했는지 혹시 궁금하십니까? 9월초에 물경 2백만 불을 던졌습니다. 예,
2억불이 아니라 그 100분의 1인 2백만 불입니다. 2분기 이익금 76억불의 무려 3800분의 1이며 부시가 깎아 준 세금의 수천 분의 1
정도를 수십 만 이재민을 위해 희사한 것입니다. 이러면서도 뻔뻔한 부시는 “재난을 틈타 기름값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엑슨모빌은 하룻밤 사이에 그들의 주유소 가격을 단 20%밖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총체적으로 썩어가는 나라입니다. 유감스럽지만, 미국인들이 집합적으로 그들의 지도자들과 언론에 수십 년 지속적으로 속고 있는
까닭입니다. 헛똑똑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엑슨모빌 같은 회사가 큰 이익을 내면 미국 경제지표는 좋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런
지표가 미국인 전체 가운데 몇 %의 경제 사정을 대변하는 것인지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돈을 긁어 모으는 자본이 흘려주는
부스러기가 많으냐 적으냐를 두고 경제 상황을 판단합니다. 그들로부터 좀 더 큰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정치인 집단과 언론은 자본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으로 기꺼이 복무합니다.
언론은 대중의 관심이 월드시리즈 같은 스포츠나 헐리우드 배우들의 사생활 같은 가십거리에나 묶여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정치인들은
테러의 위협을 빌미로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세뇌하고 있습니다. 테러나 마약문제가 왜 근절되지 못하는지,
아프칸이나 이라크 같은 나라를 왜 침공해야 했는지, 그 이유는 타당했는지 등의 질문은 주류언론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할 뿐 아니라, 이제는
반사회적, 비애국적 행위로 간주되는 사회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젊은이가 수없이 관에 실려 오고, 무고한 이라크인이 매일 수십 수백씩 죽어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습니다. 아브그라이브 감옥이나 쿠바의 콴타나모 기지에 죄명도 모르고 갇혀있던 죄수 아닌 죄수들을 수천 명 풀어주면서, 그들을
가두었던 것이 타당한 것이었는지 묻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들을 고문하고 모욕했던 여군 하나에게 징역형을 때리면서 그런 행위를 조직적으로 지시하고
방조한 높은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소리는 없습니다. 철부지 여군 한 명을 징벌하여 마치 미국 권력의 양심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상징조작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미국은 더 이상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경찰도 인권과 민주주의의 챔피언도 아닙니다. 그들은 군사력과 자본력이란 두 주먹으로
세계를 ‘공포와 충격’으로 지배하는 조폭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조폭의 의리에 불과하고,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만 의미가 있는 가치와 체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윤리나 도덕적 가치조차 미국 정치권력의 입에서 나오면 이제는 조폭의 명분 세우기라고
간주해도 편견이 아닌 세상이 된 것입니다. 미국 역사를 돌아 볼 때 이런 평가가 반드시 새삼스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후안무치 했던 일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에게 애증이 교차될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정치권력이 그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볼 때, 무작정 그
정치권력과 시민을 분리해서 평가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정체성이 그 시민보다는 싱크로나이즈된 정치권력, 언론 그리고 자본권력 등에 의해
대변되어 나타날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들 싱크로나이즈된 미국 엘리트 권력에 의해 피해를 보는 1차 대상이 바로 미국 시민임을 생각하면
그들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전 세계 평화와 공존의 가장 큰 장애물로 변한
이유와 과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미국 기업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나?
우리 대통령께서 중앙아시아 순방 외교 후, 밖에 나가 보니 “기업이 곧 국가더라” 라는 말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
세계의 정곡을 찌르는 말입니다. 최소한 이 글의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기업이 국가가
되어야 한다’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입니다.) 체력이 국력이란 말도 있고,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나 국가는 체력이나 우리 것으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시장으로 먹고 사는 체제입니다. 우리에게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챔피언 같은 미국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미국 기업이 곧 미국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기업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미국이란 국가의 정체를 옳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그러나 미국 하면 맥도널드나 지엠 또는 코카콜라 같은 기업이 아니라, 세계에 군림하는 그들의 강력한 군사력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오늘 현재도 그들의 핵전력과 막강한 해군력, 공군력 그리고 기계화된 육군이나 해병대가 거의 전 세계 모든 곳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말입니다. 미국의 첩보위성과 전 세계 NSA 감청 포스트(Listening Post)들은 모든 세계인의 e-메일을 열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쓰는 이 글에 사용된 단어들 가운데 몇 개가 오늘 유효한 NSA 감청 딕셔너리(Dictionary,사전)에 포함된 것이라면 이
글은 웹에 포스팅 되는 순간 미국 Fort Meade NSA 본부의 수퍼x수퍼 컴퓨터에 의해 분석될 것입니다. 현대 미국의 군사력은 그 정보
수집-분석-처리 능력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미국 군사력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미국
기업과 연관되는지를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전승국 미국은 소련과 동구권 그리고 모택동의 중국 등 몇 나라를 제외한 거의 전 세계
모든 곳에 그들의 군사력을 진출시켰습니다.
과거 제국주의는 일반적으로 포함(砲艦 gunship, 오늘 날은 전투 헬기)의 뒤를 이어 선교사들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미국 제국주의는 전 세계에 포진된 미군기지 뒤로 소비문명과 기업들을 진출시켰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내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산업 생산 능력을 갖게 된 미국으로선 꼭 과거 제국주의 야욕의 부활이라기보다는 미국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피폐해진 유럽 경제를 되살리는데 큰 역할을 한 마셜 플랜 같은 것도 좋게 보면 선의의 원조이고 달리 보면
미국 기업의 시장을 되살려 경제가 침체 하지 않고 계속 성장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점은 그렇습니다. 전쟁은 미국 기업의 생산성과 기술우위 그리고 생산능력을 대폭 신장시켰으며,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당연히 새로운
시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 시장 개척의 첨병이 전 세계 미군 기지였고 그것들을 거점으로 미국적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미국 기업이 본격적 세계화의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말입니다. 미국 중심의 공급주의 경제(supply-side economics)는 레이거노믹스가 효시가 아니라, 사실은 2차
대전의 종결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2차 대전으로 조성된 가수요 기준으로 편성된 산업과 경제를 지속 성장시키기 위해 그 전쟁과 맞먹거나
능가하는 시장의 창출이 필요했으며, 그것은 전 세계 수요와는 무관하게 미국 기업들의 ‘지속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미국적 소비문화의 확산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이 있어야 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곧 죽음입니다.
그 시장과 성장을 미국에 보장한 것이 바로 군사력과 화석 에너지를 독점하고 있는 메이저들, 그리고 그들을 장악하고 있었던 자본권력입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석유 에너지를 기본 동력으로 하는 미국의 소비문화와 산업, 그리고 20세기 후반 인류 문명의 급격한
석유 에너지 의존도 상승은 결코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일어 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2차 대전 자체부터 히틀러의 광적 편집증이나 유럽에 창궐한
파시즘 선풍 때문에 발발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보는 순진한 시각이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석유 메이저, 그리고 그들과 열강의 중앙은행들을 이미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었던 자본권력은 이미 1차 대전을 통해 전쟁이
그들에게 어떤 기회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경우, 그 노하우는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쨌든, 자본주의 시장 경제라는 시스템과 미국적 풍요를 부러워하는 전 세계의 전후 개발과 경제 성장은 상당 기간 미국의 공급력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일본과 독일 그리고 기타 유럽 선진국들의 복구와 성장은 세계 시장을 미국의 손에만 맡겨 두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군수산업은 2차 대전이 끝난 다음에도 한 해도 빠짐없이 증액되는 국방예산과 냉전체제하의 군비 경쟁, 그리고 막대한 무기
수출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쌓여만 가는 엄청난 전쟁 기계들의 재고를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그러한
군산복합체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두 개의 메인 출구였고, 이스라엘과 중동, 중남미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비교적 작은 출구였던 셈입니다.
메이저들은 그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전 세계 석유자원을 기반으로 더욱 강력하게 미국과 전 세계의 자본시장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1차 세계 석유
쇼크는 이들의 과욕과 오만이 중동의 왕자들과 충돌하며 일어 난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사실은 그들 사이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건이었을
따름입니다.
2차 석유 쇼크는 이란의 팔레비가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미국을 그레이트 사탄이라고 부르며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메이저들에게는 결코 넘지 못할 장애물은 아니었습니다. 장애물은 오히려 유가가 너무 오름에 따라 대체 에너지 개발이 촉진되고 소비가 위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차 쇼크 이후, 메이저들은 상당 기간 저유가 시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마약상들이 희생자가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까지는 고의로 싼값에 마약을 건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략입니다. 이런 저런 쇼크와 경기 침체 등에도 불구하고, 결국 과거 30여 년
동안 세계는 구제 불능 수준으로 석유 에너지 중독이 심화됩니다. 화석 에너지를 장악한 메이저에게 그 다음 위협이 무엇이었는지 짐작되십니까? 바로
원자력 에너지입니다.
원자력 에너지는 대안이 아니라 구원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상당수 환경단체나 시민단체들이 원자력 발전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 줄 압니다. 핵폭탄이 원자력의
악마적 이용이라면 원자력 발전은 그 정반대의 천사적 이용입니다. 그것은 마치 칼이 살인에 쓰이는 것과 생선을 썰기 위해 쓰이는 것처럼 비교할 수
없는 쓰임새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책 없는 또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환경론자들을 중심으로, 원자력 발전이나 원자력의 활용을
반대하는 것이 무슨 세계적 전위 문화처럼 유행하게 됩니다. 알았든 몰랐든 그들은 결과적으로 화석 에너지를 독점하고 있는 메이저들이 원하는 일을
대신 해준 꼴이나 다름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은 구 소련의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와 미국의 드리마일 아일랜드(Three Mile Island) 발전소 사고가
증거로 제시되고 있으며, 잭레몬이 열연한 “차이나 신드롬 China Syndrome” 이란 헐리우드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포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체르노빌처럼 실제로 발생한 원자로 멜트다운(melt down)사고나, 드리마일 아일랜드처럼 원인과 결과가 불투명한 에피소드나, 모두
원자로가 아무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그런 사고들이나 SF영화 등이 전 세계 원자력 발전소 건설
붐에 큰 타격을 준 것도 확실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 속에도 불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원자력 발전소보다 수만 배는 더 위험한 핵무기를 수만 개나 가지고 있는 지구가, 지금 전세계 모든 안전
표준의 가장 엄격하고 정밀한 안전 보장 체계(Quality Assurance Management)를 선도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요? 천연가스를 태우든 디젤을 태우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에너지 사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을 환경론자들이 극구 반대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일까요? 고갈되어 가는 화석 에너지의 종말을 뻔히 내다보면서, 언제 상용화될지 알 수 없는
수소 에너지나 여타 대체 에너지들만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대책을 두고 대책 없는 길을 가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50년 안에 전 세계에는 약 5,000개에서 6,000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어야 하며 건설될 것입니다. 능력 있는
국가들은 모두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가져야 하며, 핵연료마저 미국이나 강국들의 손에 매점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방향은 물론 메이저들의
이익과 충돌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한 미국에서조차 핵발전소 건설을 차단하고 있는 이들이 순순히 그들의 시장을 핵발전소에
빼앗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류 언론들은 화석연료 발전의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것의 해결책은 없는지 결코 진지한
토론을 벌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나 이긴다면 굳이 역사를 논하고 미래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역사는 절대 강자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핵 발전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개발한 한국형 원자로가 앞으로
중요한 잠재 수출 품목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 우리 국민들은 모두 원자력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고맙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우리기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핵연료를 비축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주장이
결코 여타 대체 에너지 부분의 연구 개발에 소홀해도 된다는 뜻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방사능 폐기물 보관 시설 건설
등의 국책 프로젝트에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극력 반대 투쟁을 일삼는 일부 환경론자들이 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보고, 무엇이 진정 위험한 것이고
무엇이 합리적으로 안전한 것인지 깨닫는 일입니다.
미국 에너지 제국주의의 타겟 - 이란
북한의 핵 문제와도 긴밀한 연관성이 있으며, 향후 유가의 경이로운 점프를 가능하게 할 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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