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날것을 알고 미리 피신한
야산선생
한국전쟁 이전, 우리나라에서 주역의 대가로 손꼽힌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야산 이달.
주역에 달통한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정도로, 대단한 신통력을 보였던 그가
어느날, 제자들에게
"모든 재산을 처분해서 현금으로 가지고 와라"
고 합니다.
그러자, 거의 모든 제자들이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현금으로 가져왔는데, 몇 사람의 제자들은
선뜻 그렇게 하지못하였고 결국 내치겠다는 호통에 못이겨, 모든 제자들이 재산을 처분하게
됩니다.
재산을 모두 스승에게 바치고, 그들은 스승 야산선생이
이끄는 충남의 한 작은 섬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은 바로 '안면도'
지금은 다리가 놓여서 육지와 다를바가 없지만, 당시엔 '섬'이어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하는
시골중의 시골, 외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면도에 가보니 이미 야산선생이 미리 준비해놓은 전답과 집들이 있었고,
스승은 제자들과 함께 안면도의 깊은 산속에서 농사짓고 주역 공부를 하며, 3년간을
지냈습니다.
그로부터 3년후...
그들이 다시 세상에 나왔을때, 놀랍게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 휴전이 된 후였던 것입니다.
한국전쟁 바로 직전, 천기를 꿰뚫어보고
안면도로 몸을 피신한 야산선생과 제자들. 미래를
꿰뚫어보고, 전쟁을 피해 잠시 은둔했었던 것입니다.
야산 선생 아들의
증언
일본 경찰 뺨 후려치던 고집불통 선비가 그립다|이이화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나를 소개하는 짧은 글에는 어김없이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터. 무엇보다도 내 아버지의 행적이 주변에 많이 알려진 탓일 게다.
우선 당신의 제자들이 대구 대전 서울 등지에 퍼져 살면서 스승에게서 배운 ‘주역’을 강의했다. 그
가운데 한 분인 대산 김석진 옹이 아버지의 학문과 행적을 담은 ‘스승의 길, 주역의 길’(한길사)이란 책을 펴내 세상의 이목을 끌기도 했고
조용운 교수는 아버지의 기행(奇行) 같은 행적을 담은 글을 신문에 연재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생애는 ‘신비스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분명히 나의 아버지 야산(也山) 이 달(李達)(감히 객관적으로 기술할
요량으로 존칭을 생략)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주식으로 돈벌어 ‘이상촌’ 건설
자, 지금부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기로 하자.
아버지는 1889년 지례 원터(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서 몰락한 향반(鄕班)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한문을 배울 때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성장해서는 독학으로 주역을 독파하였다고 한다.
3·1운동 소식을 뒤늦게 듣고는 김천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부르다 잡혀 취조를 받기도 하였다. 당시 아버지를 둘러싸고 ‘주역 읽다가 미쳤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탓인지 아버지는 이내 풀려났으나 그때부터 요시찰 대상이 되었다.
40대 들어 대구로 나온 아버지는 엉뚱하게도 ‘기미(期米, 주식 형태의
투기)’에 손을 댔다. 주역에 통달했다는 소문 탓인지 아버지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나는 한국전쟁 직전 서산 안면도(당시는 서산군에 속함)로 이주하였다.
좁은 안면도에 300여호의 주역패가 몰려들었으니 화젯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아버지가 3년간 살던 대둔산 수락리와 석천암이 한국전쟁
말기 빨치산의 손에 넘어가 모조리 불에 타버리고 안면도만 안전한 피난지가 되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야산선생을 신통한 예언자로 받들 수밖에
없었다.
9·28 수복 후 아버지는 다시 제자들을 데리고 부여로 옮겨왔다.
아버지는 주역을 가르치면서 주역 이론에 따라 선천(先天) 중천(中天) 후천(後天)의 논리를 제시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태동한 변혁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다. 곧 반상(班常) 빈부 귀천의 차별이 없는 이상사회의 출현을 갈망하는 이론이었던
것이다.
후천개벽사상은 동학 증산도 원불교 등 민족종교에서 모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민중사상의 한
흐름을 정리해 제시한 것이다. 아버지는 여기에 ‘중천’이라는 중간 시기를 두어 앞으로 도래할 후천을 준비한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주역에서 말하는
자연순환의 이론을 빌린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머지않아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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