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술이부작 -
인터넷이 보급되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토론의 공간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학교에서 '찬성,
반대'로 분단을 나누어 2, 3분 남짓 발표하는 게 고작이었던 기존의 토론문화로부터, 모든 사람이 (스크롤의 압박을 무시하면) 거의 무제한의
분량으로 자신의 입장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 법. 우리의 토론문화는
아직도 너무 미숙하다. 얌전하게 시작하고서도 마지막엔 '개념 좀 탑재하삼' '초딩이냐?' '찌질이 즐~' '반사~'같은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현실의 원인을 우리의 일천한 토론문화에서 찾을 것인지, 인간의 신념이 갖는 속성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필연적인 결말로 볼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토론과 논쟁 없이 살 수 없다면,
그것을 가급적 생산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인터넷 토론 경험이 많지도 않고 능숙하지도 않지만,
그동안 개인적으로 느끼던 것을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예전에 썼던 글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아 좀 민망하다. 토론에 대한 소중한 경험과
가르침을 제공해주신 많은 분들께 일일이 감사를 전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강호에서 활약 혹은 은둔하시는 고수님들께서 트랙백과 답글로
보충, 보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1. 실시간으로 답하지 말라
사람의
의견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의식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기존의 신념과 배치되는 사실은 수용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이 외부로부터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고 느낄 때는 강하게 저항한다. 사람이 의견을 바꾸는 것은 그것이 자기 스스로 행한 주체적 고민의 결과라고 인식할
때이다.
반면에 인터넷에서는 빠른 시간 내에 답을 할 것이 요구된다. 답이 없으면 패배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래서 충분히 고민할
시간 없이 서둘러 답글을 달게 되고, 원래의 글과 큰 차이가 없는 인식구조로 답을 하려니 오류와 억지와 비약이 생긴다.
그러니,
답글을 보자마자 바로 자판을 두드리지 말고, 찬찬히 생각해 본 후에 답을 할 일이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동의할 수 없던 논리에 수긍이
가기도 하고,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반박 논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 동안 상대방의 흥분도 가라앉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가능하면, 실시간으로
답하지 말라.
* 주의: 답글을 너무 오래 방치하면 '답글을 씹는' 매너 없는 행위가 된다.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생각해보고 답글 달겠습니다'하고 알리는 센스를 발휘하자.
2. 조목조목 반박하지
말라
인터넷 토론에서 꽤나 자주 보이는 유형이, 상대방의 글을 옮겨온 후 문단별로 나누어 반박하는 방식이다. 나도
한때 자주 썼었다. 간편하고, 뭔가 '반박하고 있는' 느낌을 주기때문에 애용되는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토론의 형식으로서는 별로 좋지
않다.
우선 독자가 따라오기 힘들다. 이 주장 읽다 저 주장 읽다 하려면 정신이 없다. 세번, 네번씩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 독자뿐
아니라 자기도 힘들어진다. 게다가 글은 일정한 논리의 흐름을 갖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이걸 따라 반박하는 것은 자신을 상대방이 정한
규칙에 얽어매는 것이다. 끝으로 모든 문단에 반박문을 달려고 시도하다 오류를 범하거나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게 된다.
자신의 주장은
자신의 구조에 따라 새로 쓰는 것이 좋다. 내 생각은 내 글이 말하게 하자.
3. 예시를 쓰지
말라
예시는 논증의 기본적인 기법이다. 그러나 기본적인만큼 취약하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례에 대해서는 반례 또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하면 바로 '저런 사례도 있다'는 반박이 들어오고, 그 때부터 토론은 원래의 주제는 사라지고
'사례 많이 들기 게임'으로 전환된다. 인터넷에서 나라이름대기같은 놀이에 목마른 게 아니라면, 예시를 쓰는 것은 최소한으로
줄이자.
4. 예시를 반박하지 말라
위와 같은 이유이다. 대개의 주장에서 예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주장을 좀 더 생생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을 뿐, 예시가 반박된다고 해서 원래의 주장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인 것에 대해 진지한 반박을 하게 되면, 역시 본래 토론이 벌어졌던 논제와는 전혀 다른 주제를 갖고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예시가 궁극적인 중심 근거가 되는 글이 아니라면, 사례에 대한 반박은 하고 싶어도 될 수 있으면 꾹 참자. 아니면, 새로운 토론을
시작할 것을 감수하거나.
5. 다수를 하나씩 상대하지 말라
간혹 '집단
다구리'를 당하게 될 때가 있다. 다수가 반대하는 주장이란 그에 대해 일반적인 합의가 있음을 의미하고, 따라서 하나의 유형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쓴 답글에 대해 일일이 또 답글을 달려면 피곤하기도 한데다,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 경우가 많다. 각 답글들의 논리를
분석하고 유형화해서, 하나의 새로운 글을 써 반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
주의: 반대 집단이 동질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으므로 세심하게 분석하고 유형을 나눌 것.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6.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
모르는
것을 억지로 우기지 말자.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흉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같은 논리를 반복하는 것은 '찌질이'로 찍히기 딱 좋은
행동이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인정하거나, 더 알아보겠다고 하거나, 잘 이해가 안된다고 얘기하자. 단기적으로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겠지만,
'~빠'같은 비하는 면할 수 있다.
* 주의: 알아본다고 해놓고 실제로 알아보지 않으면 반칙.
온라인에서라도 한 약속은 지키자.
7. 빈정대지 말라
냉소와 풍자는 보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통쾌하다. 나도 기발한 패러디를 보면서 뒤로 넘어가도록 웃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영 감이 안잡히는 주장을 상대할
때는 그런 기법도 자연스럽고, 항상 정공법만 갖고 싸울 수는 없으니 짧은 답글을 달 때나 설득에 큰 관심이 없을 때는 이런 비꼬기도
유용하겠다.
하지만 일단 토론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정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일단 비아냥대는 말투는 꾹 참는 게 좋겠다. 옳은
주장이라도 감정이 상해서 인정하지 않게 될테니. 물론 어지간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논리만 맞으면 수긍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인격자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대화중인 상대에겐 일단 예의를 지키자.
8. 의심스러운 자료는 직접
확인하라
상대방이 제시하는 자료나 논거 중 믿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라.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1)
자료가 조작, 오용됐거나 근거가 희박한 것일 경우 이를 밝힐 수 있다. 2) 자료가 사실일 경우, 자신이 직접 찾는 노력을 함으로써 자료 내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사실일 경우 신속히 인정해야 함은 당연하다.
9. '합의 불가능함'이
확인됐다면?
어차피 토론에서 '합의'가 나는 사례는 적다. 몇번 글을 교환해보고, 거리가 좁혀지지 않음을
확인했다면? 뭐..여기서부턴 나도 대책이 없다. 그냥 서로 무시하든지(휴전),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든지, 악플을 주렁주렁 달아 쫓아내든지. 그건
상황에 따라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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