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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C[잡다한것들]/과학 읽을거리

인간은 과연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by 칠칠너래 2006. 12. 30.
 

지난 시간까지 미래의 기술과 관련되어 주로 탈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구체적인 기술과 관련되어서는 아직도 소재 거리가 많겠지만 특성상 다소 건조한 이야기가 되는 듯 하니 다음 기회에 다시 돌아와 보도록 하고, 오늘부터는 인간과 자연의 미래상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인간은 과연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과거 본 시리즈를 통해 인간이 기계화되거나 컴퓨터와 통합될 - 혹은 컴퓨터에 의해 대체될 - 가능성에 대해 논한 바 있었다. 인공지능 계통의 학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이런 생각은 분명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컴퓨터 자체의 기술적인 발전이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부터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컴퓨터 발전 속도를 본다면 충분히...' 라는 식의 생각에 빠지곤 하지만 이는 단지 짧은 기간의 경험에만 기초한, 그리 논리적이지 못한 사고방식이다. 단순히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컴퓨터가 사실상 인간의 뇌를 대신하는 것은 질적으로 매우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질적인 다름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자. 마라톤의 세계 기록은 70년 전 보다 약 20분 정도 단축되어 있고 이는 분명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록이 계속 같은 비율로 단축되어 수백 년 후에는 불과 몇 분이나 몇 초안에 수십 킬로미터를 돌아 들어올 수 있게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일단 인간의 육체가 가진 능력에는 분명 물리적 한계가 있고, 또 속도가 향상될 수록 이후의 단축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수준의 이동 속도를 얻어내고자 한다면 인간이 타고 난 두 다리를 통해 달리는 것과는 다른 식의 접근법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는 지난 수천 년간 마차, 기차, 자동차, 나아가 제트 엔진이나 로켓 등을 통해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달성되어 왔다. 이것은 비록 배경사상의 면에서는 달리기의 연장일지 모르지만 실은 달리기 능력 그 자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며 또 이를 위한 특별한 관점과 기술이 도입된 결과다. 

 

(이런 문제에 대한 사고의 오류는 곳곳에 존재한다. 흔히 접하는 이야기로, 무술가들이 높이 뛰기 수련을 위해 묘목을 심어 놓고 매일 매일 그 나무를 뛰어 넘는 연습을 한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하면 나무가 커 가면서 점프력도 조금씩 같이 향상되어 나무가 아주 큰 이후에도 뛰어 넘을 수 있고, 그래서 엄청난 점프가 가능하다는 식이다.

얼핏 그럴 듯 하고, 그런 연습이 목표 의식과 꾸준함을 심어 줌으로서 점프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육체가 허용하는 일정한 한계까지의 이야기고, 그런 수련을 함으로서 향후 사람 키의 몇 배가 넘게 자란 나무까지 뛰어넘을 수 있은 것은 분명히 아니다. '어제 넘었는데 오늘은 못 넘겠냐' 는 생각을 근거로 언제까지나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는 말이다. 두 다리만으로 나무를 넘을 수 없는 특정 시점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고, 이때부터는 도구와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 양의 증가가 결국 질적 차원의 변화를 초래하는 이런 상태를 흔히 '양질전환'의 시점이라고 한다)

 

같은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컴퓨터의 발전 속도를 토대로 조만 간에 실제 인간 두뇌를 대체하거나 능가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마빈 민스키 류의 낙관론은 어쩌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단순 계산에서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행인으로 가득 찬 길에서 부딪히지 않도록 비켜 다니는 일이나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는 아직 극히 낮은 능력밖에 지니고 있지 않다. 또 인간의 뇌는 수십억 년 진화의 산물로서, 어쩌면 기계 회로로는 근본적으로 재현 자체가 불가능한 미묘한 성질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컴퓨터가 인간의 뇌와 연결되어 용량 및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늘리거나 아예 '교체 장착' 될 수 있을 거라는 발상은 두뇌의 작동 구조조차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는 그 실현 가능성을 논하기 대단히 어렵고 원천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둘째로는, 그런 컴퓨터 기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을 사라지게 만드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터미네이터 등을 통해 익숙한 이런 미래상은 우리가 앞에서 논한 한계를 극복하고 '생각하는 기계', '자의식을 가진 기계' 를 만드는 순간부터 현실적인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때 상황은 단순히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죽이는 것에서부터, 인간이 조금씩 기계와 섞여 들어 점차 그 특성을 상실하고 종내에는 완전히 기계로 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경우 그 존재는 인간의 후계자일 망정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바의 인간이나 그 생물학적 후손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미래' 라는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런 만큼 오늘부터는 이런 컴퓨터와의 통합 부분은 논외로 하고, 순전히 생물로서의 인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인간의 경우 그 진화의 방향이나 성격이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과는 상당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복잡 미묘한 사회 조직과 고도의 기술 문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 - 도구나 불의 사용, 사회 생활, 언어 등 - 은 이미 지난 수십만 년간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쳐 왔고 우리는 그 연장선상의 존재들이다. 한편 초기 인간의 탄생 자체도 우연찮게 갖게 된 몇몇 특성이 자연 선택에 의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흘러온 결과일 수도 있다.

 

두뇌와 손의 발전이 돌연변이 등으로 먼저 이루어지고 거기에 따라 지능과 손기술 등이 발전한 것인지, 아니면 환경적 특성과 우연에 의해 도구 등을 먼저 사용하게 되고 이후 그런 형태의 발전이 촉발되고 가속화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물론 이와 관련된 논의는 매우 복잡한 것이고 - 과연 어디서부터가 '인간'인가라는 문제부터 - 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미묘한 점들이 있기에 실제 벌어진 상황의 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참고로 우리는 흔히 인간만이 도구를 쓰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포유류 계열은 물론 조류들 중에도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적지 않다. 일부 영장류는 자연 상태의 나무를 두들겨 쓰기 편한 형태를 만든 후에 특정한 방법으로 - 호두 까기 등 - 쓰기도 하며 이를 후손들에게 가르친다. 이런 도구 사용법은 우연한 계기에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런 부분이 진화상에서 점차 강조되어 간다면 이들 역시 수백만 년 후에는 지금의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태고적의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최소한 1~2 만년 전, 즉 현대의 우리가 의미하는 바 과학 기술 문명이 존재하기 훨씬 전인 신석기시대 쯤에 이미 인간은 지금과 같은, 혹은 사실상 구별이 불가능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두뇌 용량, 체구에 비해 약화된 근력과 기타 신체 능력, 퇴화된 꼬리, 무기로는 부적절한 약한 손/발톱 등 현대인의 여러 가지 특성은 단순한 마제 석기 정도를 사용하고 부족 수준의 생활을 하던 그 시절에 이미 완전히 정립되어 있었다. 이는 결국 그 정도의 기술과 사회 조직으로도 현생 인류가 나타날 생물학적/진화적 조건은 이미 갖추어 졌었다는 말이다. 이후 신체 능력 등과 관련되어 약간의 퇴화가 더 진행되었을 망정 그 차이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도 꾸준한 운동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산업 혁명을 필두로 기술과 동력이 문명의 핵심을 이루어가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그 전까지 수십, 수백만 년간 인간의 진화를 규정하던 바로 그 조건들이 수백 년이라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크기로 팽창해 버렸기 때문이다. 돌 삽은 포크레인으로 바뀌었고 화살은 미사일, 마차는 비행기로 변해 버린 이 상황은 결국 인간이 가진 육체 능력을 기술을 통해 수천, 수만 배 확대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또 사회 조직은 너무나 복잡해져서 이제 각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과 영역을 스스로가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태고,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나 책임 및 권리의 함수 관계 또한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현대 문명의 특성은 과거에 비해 인간의 진화에 더욱 농밀하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학자들이 제시하는 인간의 향후 진화 형태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거대한 두뇌와 그에 맞는 두개골의 크기   

학문과 기술, 복잡해진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두뇌는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거기에 맞게 두개골도 커져 간다. 즉 '대두'가 인류의 표준적 형태가 된다. 

2. 퇴화되는 근육과 골격

도구와 동력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가진 물리적 힘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든다. 그리하여 팔과 다리, 몸통 등은 어린아이처럼 작아지고 얇아지며 약화된다. 따라서 커지는 머리와 함께 전체 형태의 '가분수' 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3. 오감의 저하

사냥의 필요성이나 맹수로부터의 위협 등이 줄어듦에 따라 (계기판과 모니터 등을 보기 위한) 시각 외에 모든 감각의 예민함은 점차 사라져 간다.

4. 발성 기관의 퇴화

다양한 문자 및 상징을 통한 메세지 전달 기술과 (지금의 인터넷 채팅이나 이메일, 휴대폰 문자 등을 생각해보라), 심지어 두뇌의 발달에 의한 텔레파시 능력이 개발됨으로써 발성 기관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5. 길어지는 손가락

한편 복잡한 기계 장치 등을 조작하기 위해 손가락은 더욱 길고 섬세한 형태로 발전한다. 손가락 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주장들을 엮어 보면 미래의 인간은 대략 아래와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위 그림이 익숙해 보이는 것은 우리가 간혹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보아왔던 소위 '외계인' 의 사진을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사성은 사실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든 머나먼 외계에서 지구에까지 날아올 능력을 갖춘 발달된 외계인이라면 과학 기술과 문명의 수준도 분명 우리보다 훨씬 높을 것임에 분명하고, 따라서 위에 제시된 관점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진화해 왔을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추측이 진정 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외계인들 - 실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경우 - 이 실제로 그런 모습이라 한들 그것은 그들이 사는 행성의 자연 조건으로 인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중력이 작은 행성이라면 우리에 비해 근골이 연약하거나 머리가 훨씬 큰 상태가 자연스러울 수도 있고, 아몬드 형의 큰 눈 또한 상대적으로 어두운 그들의 태양 때문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큰 머리가 실은 오징어나 문어 같은 두족류처럼 두뇌가 아닌 위장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은, 만약 위의 진화 방향이 우리 인간에게 실제로 벌어진다고 봤을 때라도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지금의 모습에서 저와 같은 형태로 바뀔 것인가라는 점이다.

고인류학의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인간의 진화 속도와 양상을 고려해 본다면, 몸의 비율이나 기타 등등 여러 가지 형태적 특성을 기준으로 할 때 인간이 저기까지 바뀌어 가는 기간은 최소한 수십만 년, 길게는 수백만 년이 소요될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과학 기술 문명의 폭발성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를 단순 대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인류 생활상의 변화는 그 이전 수십만 년을 합쳐 놓은 것만큼이나 엄청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의 진화 속도는 지금까지에 비해서 훨씬 빨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인류의 형태적 변화는 영양 공급의 원활함으로 인해 키가 약간 커진 정도 외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 보듯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따른 유전자의 변화가 인간의 문명의 발전 속도를 완전히 따라 잡을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한다 한들 수백 년 새에 수십 만년 분량이 바뀌어 버릴 리는 만무하다.

 

더욱이 진화는 한 개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시간의 최소 단위가 있다.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다윈의 기본 법칙에서 드러나듯, 내가 생존하고 있는 동안 제 아무리 큰 변화가 일어나도 그 변화가 나의 유전자에 자동적으로, 직접적으로 새겨져 후세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긴 시간에 걸친 우연과 적응의 산물로서 세상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따라서 향후 수백 년 동안 세상이 말 그대로 뒤집어질 만큼 극단적으로 바뀐다 한들, 인공적인 유전자 조작이 가해지지 않는 한 불과 몇 세대에 불과한 그 시간 동안 지금의 인간이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수천 년, 길게는 수만 년 이상이 필요할 것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설사 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우리 증손자 증손녀들이 3 등신의 가분수로 우리 앞에서 뒤뚱대며 일곱 개의 손가락을 통해 리스트나 파가니니의 연주를 장난같이 해 치워 버리는 모습을 볼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최소한 자연적인 진화 상태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변수가 존재한다. 일단, 과연 인간이 학자들의 추측대로 외계인 형태로 진화해 갈 것인가의 의문이 있다. 다시 말해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전은 숙명적으로 저런 형태의 존재들을 낳게끔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 대로, 학자들이 외계인 형태를 인류의 미래 모습으로 주장하는 근거는 기계가 팔 힘과 다리 힘을 대신하고 두뇌의 효용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현대 인류가 만들어 가고 있는 기술 문명의 모양새에 기인한다. 그러나 비록 현대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이 과학 기술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더라도, 단지 그런 모습 만으로 모든 것을 단순화 시킨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문명은 한 두 마디 단어로 정의가 불가능한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띄고 있다.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 문명을 지배하는 주 요인들도 달라진다. 어떤 이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야 말로 문명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은 정치야말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적 욕망의 실현을, 분자 생물학자들은 유전자(Gene) 의 생존 본능을 문명 배후에 깔린 진정한 추동력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다시 말해 과학 기술과 교통하거나 양립해서 존재하는 온갖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들 또한 분명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역시 진화의 방향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인류의 모습은 앞서 이야기한 외계인과 같은 형태와는 사뭇 다른 것이 될 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유전자 조작이다.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로 봤을 때 인간 복제는 물론, 원하는 행태로 인간을 설계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마도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행위의 위험성이나 부작용은 그것대로 논의될 문제지만, 그 가치 판단을 떠나 이 기술이 일단 존재하게 되면 그때부터 음양으로 인간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게 됨은 자명한 일이다. 유전자 조작 기술 자체가 지난 수십억 년 간 자연의 고유 영역이었던 진화와 돌연변이 영역을 인간에게로 끌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이 기술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순간, 그때부터는 우리 인류 자신이 스스로의 진화를 직접 컨트롤한다는 뜻이다. 그 결과가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렇게 설계되고 조정되어 탄생한 인간은 분명 자연에 맡겨진 상태 그대로의 진화 결과와는 상당히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 계속 이야기해 보자.

 

출처 :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