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너래 2006. 12. 31. 08:49
 

우리가 미래를 생각할 때 컴퓨터와 과학 기술의 발전 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종말론 및 그 다양한 시나리오다.

 

종말론에는 고대 종교에서 비롯되어 수천 년의 전통을 가진 '최후의 심판' 류에서부터 최신식 외계인의 침략설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기기묘묘한 관점들이 있는데, 물론 본  코너는 그런 것들을 신비주의나 예언적인 분위기로 다루기 위한 글은 아니다.

 

하지만 종말 시나리오 하면 주로 그런 내용들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심리인 것도 사실이며 이와 관련된 광신적인 행태는 십여 년 전 '휴거' 사건 등 매스컴을 타고 대중에 알려지기도 했다. 하긴 이런 식의 종말이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 주장들 자체가 실현 가능성보다는 인간의 두려움이나 죄의식, 지나친 상상력 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이거나 지나치게 공상적인 종말론의 문제들과는 별개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는 상황 자체를 냉정히 따져 봤을 때 이를 마냥 무시해 버릴 수 없는 현실성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때 종말의 '현실성'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일단 인류 문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자연 재해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약 6천 5백만년 전 멕시코 유카탄 지역을 때린 거대한 유성의 충돌은 직경이 300 킬로미터가 넘는 충돌 분화구를 만들었고, 충돌시의 충격이나 그로 인해 생겨난 분진의 양은 전지구적인 재앙을 불러 오기에 충분했다(일부 학자들은 공룡 등 지구상의 생물 99퍼센트가 이 일로 사망했다고도 한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 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범 지구적 재앙이 수십, 수백만 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불과 1만년이 되지 않는 그간의 인류 역사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기록하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다. 또 굳이 대재앙적 천재 지변 외에도 이 장을 통해 다루게 될 다양한 형태의 현실적인 종말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그 실현 가능성은 사실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가 퓨처 월드 시리즈를 통해 굳이 종말론을 다루는 것은 종말이 분명 가능한 한가지 미래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며 문명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만약 정말로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면, 심지어 우리 자신이 이를 자초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지구와 자연, 생명에 대한 인간의 권리와 책임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실감나게 생각해 가는 데에 종말론처럼 효과적인 접근법도 드물다.

 

오늘은 퓨처 월드 2장 '종말 시나리오' 삼부작의 인트로로서 종말의 뜻 자체에 대해 함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하자.

 

 

 

 

 

우리는 쉽게 종말론, 종말론 하지만 사실 그 구체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대체 종말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거기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사실 비슷해 보이는 여러 종말 시나리오들은 보기에만 그럴 뿐 내용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논의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부분을 좀 정리해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과거에 흔히 사용되던 말로 '지구 멸망' 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인류 멸망'과 혼동되어서도 자주 쓰이지만 그런 태도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것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존재로 일반 동물의 차원을 완전히 넘어선 것은 불과 몇 만년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구 전체의 자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우리 생각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따라서 그런 인류가 사라진다고 해서 지구도 같이 멸망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지구와 그 생태계는 여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구 멸망의 정확한 의미는 말 그대로 지구 전체가 어떤 이유로든 괴멸적인 타격을 받음으로 해서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는 수준의 별로 전락하는 경우이다.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그것은 아마 지구 내부 문제라기 보다는 우주적 차원의 재앙의 결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가장 확실한 지구의 멸망은 약 50억년 후에 일어난다. 태양은 이제 수소 연료를 대부분 헬륨으로 전환시킨 후 적색 거성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 때 그 크기는 엄청나게 팽창하여 화성의 궤도를 넘어서게 된다. 따라서 지구는 그 속에 파묻혀 사실상 별로서의 일생을 끝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후손들은 모두 다른 생명체로 진작에 진화했을 것이며 지금 우리가 아는 바의 인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과학 기술을 그 세월 동안 조금씩이라도 계속 진보시켰다면 이런 멸망을 피해 우주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암튼 이것은 사실 멸망이라기보다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지구의 '늙어 죽음'이고, 따라서 지금 우리가 다루는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갑작스럽고도 일찍 찾아올 유사한 멸망의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목성에 충돌한 슈메이커 - 레비 혜성 같은 것이 지구 표면에 떨어진다면 그 결과는 진정 지구 멸망에 근접하게 된다. 21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목성 표면을 때린 이 혜성은 가장 컸던 7번째 조각 하나의 충돌 에너지만도 TNT 6백만 메가톤, 즉 지구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폭탄과 핵무기를 모두 합친 것의 6백배에 달했다. 충돌 직후 불기둥은 지상 3천 킬로미터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에베레스트 산의 약 350 배에 달하는 높이다. 게다가 가스 행성인 목성과는 달리 지구는 고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충격을 받게 되면 말 그대로 갈라져 버릴 가능성도 없잖다.

 

일례로 화성의 표면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수많은 충돌 흔적 중 연이어 있는 세 개의 거대한 분화구는 슈메이커 레비와 마찬가지로 3개의 거대한 혜성 조각이 순차적으로 충돌한 결과로 여겨지곤 하는데,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그 엄청난 타격의 결과로 화성 반대편 수 킬로미터 두께에 달하는 수천만 제곱 킬로미터 영역의 땅 덩어리가 우주로 튕겨 나갔다고도 한다. 이를테면 한반도 지역에 혜성이 떨어진 충격으로 반대편 남아메리카 전체가 - 물론 그 땅 위에 살던 모든 생명체와 함께 - 통째로 날라가 버리는 개념이다.

 

한편 일부 과학자들은 과거 화성과 목성 사이에 또 다른 행성이 존재했으며 지금 그 자리를 돌고 있는 소행성대는 그 행성이 파괴된 잔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태양계 지도를 보면 화성과 목성 사이의 유별난 빈 공간과, 유독 그 사이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행성들의 모습 속에서 그런 암시를 찾을 수 있다. 만약 화성 및 화성과 목성 사이의 미지의 행성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와 유사한 상황이 지구에 닥치는 것 또한 어쩌면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런 대재앙으로 인해 지구 전체가, 설사 잘게 부서지거나 뜯겨 나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생명이 살 수 없는 돌덩어리 혹은 사하라 사막 같은 불모지로 변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 멸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지구가 이렇게 된다면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해 살고 있는 우리 인류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된다는 점, 두말할 필요도 없다.
 

 


멕시코 동부 유카탄 반도. 원으로 그려진 부분이 충돌 분화구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지름이 약 300 킬로미터에 달하고 있다.

물론 충돌 면적으로만 본다면 지구 전체를 기준으로 매우 작은 영역이지만 앞서 말했듯 그 직간접적 여파는 지구 생물 99퍼센트를 죽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어 방금 언급한 인류 멸망이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생물 종으로서의 인류가 멸종하는 것인데, 물론 그 과정에 따라서는 다른 생명체들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지만 위의 경우처럼 지구가 아예 영구적인 사지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 생물 종 전체가 멸종하는 상황은 사실 그간 지구의 역사에서 여러 번 있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누구나 아는 공룡의 경우다. 공룡은 장장 1억년 이상 지구상에서 번성했고(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포함 아무리 길게 봐야 3~400 만년), 지표면 대부분의 지역에 퍼져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 공룡이 멸종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심각한 천재 지변 및 장기간의 환경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와 유사한 일이 전지구적인 스케일에서 다시 닥친다면 지금의 우리 인간에게도 별다른 방어책이 없다. 인간의 자연환경 조정 능력은 아직 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라는 종 전체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완전히 사라지는 진정한 멸종은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순수한 자연 재해 외에 전면 핵 전쟁과 이어지는 장기간의 핵 겨울, 온실 효과에 의한 해수면 상승과 그에 따른 기후 변화, 오존층 파괴를 통한 유해 태양 광선에의 노출에 의한 유전자 돌연변이 등은 장기적으로 이런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인류의 후손들이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기형적이고 비지성적인 존재로 퇴보해 간다면 그것 역시 인류 멸망이나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가 모두 죽어 없어진다 하더라도 더 강한 생물들은 이 모두를 견디고 살아남아 조만간에(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수천 년 내로) 다시 지구를 원래의 푸르른 행성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따라서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인류만 진화의 고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들 자신에게는 최악의 비극이라는 점은 다를 바 없지만.
 

 

 

 

 


그리고 가장 현실적이고 규모가 작은 것이 바로 인류 '문명'의 멸망이다. 이것은 지구가 죽음의 별이 되거나 인류의 씨가 마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문명이 괴멸되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 가능성은 앞의 두 가지에 비해 훨씬 높다.

 

문명의 멸망은 반드시 인류의 생물학적 멸종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만약 인류의 8-90퍼센트 정도가 천재 지변이나 질병, 전쟁 등으로 사망한다면 - 그럼에도 지구상에는 6~12억 명의 인간이 살아 남는다 -, 또 그로 인해 문명의 근간이 되는 정치, 경제, 기술, 보건, 의식주의 인프라와 시스템이 붕괴되고 이를 다시 복구할 인적, 물적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이는 곳 문명의 종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영화 혹성 탈출이나 매드 맥스, 워터 월드 등은 '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종족으로서의 인간은 소수나마 여전히 살아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세상의 남은 잔재들을 긁어 모아 차량이나 무기 등 약간의 기술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거시적인 의미에서의 문명, 즉 전통과 사상, 그리고 그에 따른 질서를 유지 및 계승한다는 의미에서의 고등 문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벌거벗은 각축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인류가 여전히 존속함에도 문명이 멸망한다는 의미는 대략 이런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명의 멸망은 물론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괴멸적인 비극이긴 하지만, 아주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한시적인 퇴보일 뿐 완전한 종말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 남아 있고 타고난 지능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한 결국 잔존 인류들은 새로운 문명을, 수천 년에 걸친 매우 느린 속도로라도 다시 건설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우리가 지금 건설해 놓은 이 문명이 지구상의 최초이자 유일한 기술 문명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인류는 이미 5만년 전에 뇌의 구조와 크기를 포함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생물학적 위치에 도달해 있었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인류의 역사는 사실 마지막의 5천년 정도에 국한되어 있다. 우리와 같은 선천적인 지적 능력을 갖고 있던 그 전 4만 5천년 간의 인류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극히 한정된 데이타만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지구상의 각기 다른 지역에 전승하는 신화와 민담들은 과거의 어느 시기에 찬란한 문명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인류는 이미 수 만년 전에 한번, 혹은 여러 번에 걸쳐 뛰어난 수준의 문명을 건설하고 멸망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유적들이 왜 발견되지 않느냐는 상식선의 지적이 가능하지만, 불과 2천년 전의 로마 유적도 현재의 지상보다 9미터나 아래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 흙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지상에 쌓여간다 - 1만년이 지난 유적이라면 최하 수십 미터 지하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만약 현재 인류가 번성하는 곳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 그 문명의 핵심 지역들이 존재했다면, 예를 들어 극지방이나 사막, 아마존 등의 정글, 혹은 지금은 가라 앉은 물밑 등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를 찾아내기는 극히 힘든 일이다.

 

사실 현재 지구상의 문명 중심지, 즉 대도시의 면적은 50대 대도시를 모두 합쳐 본들 20만 제곱 킬로미터가 되지 않고, 이는 한반도 보다 좁은 것으로 지구 총 면적 5억 천만 제곱 킬로미터의 2500분의 1, 육지 총 면적 1억 5천만 제곱 킬로미터의 750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 문명이 만약 멸망해 버리고 극 소수만이 살아 남아 중세 이전, 심지어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수 천 수 만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흔적도 모두 땅이나 물 속에 묻혀 버리고 우리들의 기억 역시 모호하고 과장된 신화로 변해 버릴 가능성은 거의 백 퍼센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하라의 모래 폭풍. 수만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습한 평원과 초목 지대였던 이곳에 덮인 수조 톤의 모래 밑에 무엇이 묻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상의 분류에 근거해서 제 2장 '종말 시나리오'는 지난 장처럼 '지구 멸망', '인류 멸망', '문명의 종말' 이렇게 삼부작으로 나눠 엮어 나가게 된다.

 

앞에서 대략 살펴 봤듯이 종말은 결코 공상과학이나 종교적 예언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 생전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중세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 특히 현실적인 것은, 우리 인류가 이제는 지구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자신 정도는 파괴해 버리기에 충분한 만큼의 힘을 , 최소한 알려진 역사 속에서는 최초로, 실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 등 직접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기 위한 도구와 이를 통한 전쟁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프레온 가스에 의한 오존층 파괴와 CO2에 의한 온실 효과와 해수면 상승, 각종 공해로 인한 질병 및 돌연 변이, 자원 남용에 따른 생태계 교란 등 지난 몇 백 년 동안 인류는 스스로의 안녕과 행복을 위협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이제 이런 인류의 오만과 무책임은 자연의 '자정 작용'의 대상이 되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와중에 세계 최대의 공해 생산국이자 전세계 이산화탄소의 28퍼센트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은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교토의정서를 탈퇴하는 등, 인간을 집단 자살로 이끌어갈 수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의 저열함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 1편에서 에이전트 스미스가 인간을 바이러스에 빗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구와 자연의 시각에서 현재 우리 인류의 모습을 보면 거기에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래서 이런 자괴감에 빠져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를 종말에 굴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앞서 '컴퓨터가 바꾸는 세상'편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퓨처 월드 시리즈의 목적은 도래 가능한 미래의 세계를 매우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 보고, 거기에 대해 우리의 관점을 서서히 세워 가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과 정보에 힘입어 세상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고 인간이 거기에 휩쓸려 가는 현상은 이미 산업 혁명 이후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변화 속도를 늦출 인위적인 방법은 이제 사실상 없다(그러나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그런 삶에 맞도록 진화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기에 최대한 주체적으로 적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은 거의 없는데 - 문명을 등지지 않는 한 - 이 적응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전망을 통한 대비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중세에는, 그리고 그 이전에는 사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미래라는 것이 없었다. 단지 내일, 다음 주, 내년 정도의 개념하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의 삶이 반복되었을 뿐 세상은 세월이 지나도 별로 변하지 않았고, 특히나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내가 태어날 때의 고향 집과 길거리나 내 자식이 죽을 때의 집과 길거리나 사실상 전혀 다를 것이 없던 것이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월'의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만이 늙고 죽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말 그래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19세기 말 천년 단위의 미래로 상상하던 것들이 대부분 20세기 내에 실현되었다. 물론 과학의 발전은 20세기 중반 이후 다소 더뎌진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 이 부분에 관심 있는 분은 존 호건의 역저 '과학의 종말'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중반이나 말엽의 세상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무엇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미래상 중 가장 극단적이지만 동시에 꽤나 현실적인 것이 바로 종말 시나리오다.

 

만약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특히나 우리 스스로의 우매함으로 '자살'하게 된다면 그것은 크나큰 범지구적 손실이다. 비록 현재 우리들의 수준과 상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우리가 아는 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주체적 지성체로 성장한 존재이며, 30억년이 넘는 기나긴 진화의 결정체다. 그런 우리들의 종말이 자살로 귀결된다면 이는 단순히 인간의 종족 보존 본능의 차원을 넘어 지구상의 생명 진화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물론 때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존재한다. 슈메이커 레비와 같은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거나, 지축이 전환되며 전세계의 지각이 요동친다거나 기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온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고 그 충격을 최소화하며 버텨 나가는 것이 진화의 꽃으로서 인간이 가진 책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에게 종말론은 종교적 맹신의 대상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저 황색 언론 류의 잡담거리만도 아니다.

 

이제 역사상 최초로, 우리 인간의 손에 자기 머리를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장전된 권총이 쥐어져 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현대에 있어서 종말론이 과거의 그것과 다른 이유는 바로 이런 선택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시간부터 한 편씩 찾아 뵙겠다.

 

출처:http://www.nomad21.com/